법정 현장스케치

대전지법 231호 법정.

30대 중반의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리는 동안 피고인들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날 선고공판은 의료법인 이사장 부부 등 사회지도층 인사와 탈북자가 낀 보험사기건으로 경찰에 적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사안.

북한이탈주민은 의료급여 1종 수급대상자로 자신의 병원비 부담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병원에서 발급받은 소정의 진단서가 있으면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재선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 병원에서 이들을 허위 입원을 시켜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수억 원의 보험금을 챙긴 사건이다.

이날 재판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5단독 김동현 판사는 선고에 앞서 사회지도층의 도덕성과 책무성을 강조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김 판사는 지도층들이 오히려 사회를 혼탁하게 했을 때는 사회적 혜택에 상응해 책임도 무겁게 물어야 함이 옳다며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을 들어 엄하게 꾸짖자 법정의 분위기는 이내 숙연해졌다.

김 판사는 평소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판결문으로 지역 법조계에 이름이 나있다.

대전지방변호사회 소속 문모(39) 변호사는 “명판결문으로 정평이 나있다”며 “사안 하나하나에 심사숙고 하다 보니 얼마전에는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판사로부터 준엄한 질타를 받고 법정 밖을 나온 이들은 어땠을까.

따끔한 훈계에 고개를 숙이며 법정을 나온 이들은 이내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법원 청원경찰들에게 제지를 당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날 법원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는 “판사의 진심어린 쓴소리가 사회에 군림하며 권리만 찾는 일부 지도층 인사들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로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이석 기자 ab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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