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석 사회부 차장

충청도 사람들은 실리, 실용보다 대의명분과 가치를 중시하려는 경향이 짙다. 혹자들에겐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표리부동 또는 의뭉스러운 이들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원칙과 정도에서 일탈하지 않나하는 걱정과 고민이 판단을 주저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 이익을 주창하는 실리론자들에게는 명분을 지키려는 충청도 정서가 답답할 수도 있다. 잠깐 고개를 돌리면, 손을 잡으면 편히 갈 수 있는 것을 부응하지 못하니 그들에겐 우매해보이기까지 한다. 일각에선 충청도의 발전이 늦은 이유에 대해 이 처럼 명분을 중시하고, 실리에 편승하지 못해서 결국 손해보더라도 화를 내기보다 너털웃음으로 넘겨내는 충청도 특유의 정서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충청을 이기면 전국을 이긴다는 명제는 그 동안 대통령 선거때마다 확인이 돼 왔다. 결단력은 늦더라도 합리성이 강한 충청도의 정서는 대선을 비롯한 섬세한 판단이 요구될때마다 전국민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하며 민심의 바로미터로 대변돼 왔다. 마땅하고 올바른 원칙과 명분에 충실하고자 하는 충청도 기질은 국난 때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평소엔 순한 사람들이 대의명분과 가치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던진다.

나라 지키기의 첨병을 서며 유독 열사가 많은 충정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린 이유다. 평소엔 느린 사람들이 나라가 위기라면 가장 먼저 앞장서는. 바로 ‘충청의 혼’이다.

요즘 충청도 사람들은 가슴 한 켠을 덜어내놓고 살고 있다. 세종시 문제다. 효율과 실용을 내세운 세종시 수정론과 국가균형발전이란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생채기를 남기는 것은 일부 출향 인사들이 고향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곳곳에서 충청도가 어찌하다 이렇게까지 됐냐라며 참담하고 억장이 무너진다는 소리가 들린다. 충청 출신 정운찬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향에 나쁜 일을 하겠냐”고 말하지만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 이를 곧이 믿기도 어렵다. 나랏님이 온다기에 수백년 살았을 삶의 터를 내준 사람들에게 ‘기업도시’, ‘과학벨트’ 등을 운운하고 있다. 행정부처보다 기업이 오면 일자리가 많이 생기니 얼마냐 좋겠냐란 얘기지만 기업도시라면 조상묘를 옮기고 가족들이 뿔뿔이 헤어지는, 자신의 땅을 내주지 않았을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충청의 혼이 무너지면 나라도 무너진다.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 모르나 정략적으로 충청도의 영혼을 황폐화시키는 것이라면 옳지 않다. 그렇게 해놓고 어찌 고향과 국민 앞에서 낯을 들고 떳떳할 수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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