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춘규 편집부 차장

세종시 수정론이 공식화되면서 충청권이 연일 들끓고 있다. 고향을 잃은 원주민들은 정부의 이율배반적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야권도 여야의 합의사안임을 강조하며 원안 추진을 외치고 있다. 여권에서조차 국민과의 약속인 만큼 원안을 수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수정론에 대한 반발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몸으로 부딪치고 삭발로 울부짖으며 단식으로 항의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 반대 여론은 이제 충청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일로다.

상황이 이런대도 정부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도대체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이란게 왜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충청권 출신인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세종시 계획 수정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자족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내년 1월 중에 원안보다 더 실효성이 있는 대안을 내놓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대안의 골자는 국가경쟁력과 통일 이후 국가미래, 해당지역 발전 등 세 가지다. 하지만 여야합의를 무시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정부를 어떻게 믿겠는가.

세종시 수정론의 정당성을 찾지 못하는 정부의 조급증은 이뿐만이 아니다. 유수대학의 이전, 분교설치 계획을 흘리고 대기업의 이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성급하게 여론몰이에 나섰다. 정작 대학과 대기업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용지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내리고 자율개발을 통해 기업을 유인하겠다는 것도 각종 투기와 난개발을 생각하지 못한 조치다. 기업마다 협상을 통해 차등 지원하겠다는 것도 갈등의 소지를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 태도다. ‘짜깁기식 대안’으로 충청민심을 설득하려는 것은 오히려 역풍만 맞을 뿐이다.

신뢰가 없는 정치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것은 정치의 퇴보만 부를 뿐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말을 자주 바꿔서는 안 된다. 이명막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1월 27일 대전 유세에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가 안 될 거라고 하지만 저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20일 청와대 여야 대표회동에서는 "당초 계획대로 진행 중이고 정부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 없다"고 입장를 표명했다. 이렇게 확고했던 이 대통령이 지난 11월 2일 한나라당 대표 청와대회동에서는 "세종시는 충분히 숙고해서 하는 게 좋으니까 당에서 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선회하더니 지난 4일 정운찬 총리 주례보고에서는 "내년 1월 중에 세종시 대안을 제시하라"고 태도가 급변했다. 대통령을 믿고 정부를 믿어야만 하는 국민들로서는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세종시는 분명 여야가 합의한 일이다. 더 나아가서 충청인과의 약속, 아니 국민과의 약속이다. 자족기능이 부족하면 원안에다 추가 대책을 세우면 될 일이다. 여야가 초당적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한 정책을 이제 와서 바꾼다는 것은 어떠한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정치의 퇴보고 민주주의의 후퇴다. 국론분열만 야기할 뿐이다. 여당 내 친이 친박계의 분열이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세종시 원주민들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삶의 터전을 과감히 양보했다. 그들은 오직 국가발전과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정부의 정책에 따랐을 뿐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한 대가치고는 너무나 잔인하다. 정부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 정책의 핵심인 세종시를 끝내 버릴 셈인가. chg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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