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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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3)

사헌부의 상소문은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만일 전하께서 토지와 인민은 모두 나의 소유이니 옮긴들 무엇이 손상되고 헐어낸들 무엇이 해로울 것인가 하여 백년 동안이나 대대로 편안히 살던 인가를 하루에 헐어버리고 돌보지 않는다면, 선왕께서 토지와 인민을 우리 전하께 주신 것이건마는 선왕께서는 규모를 넓게 하지 않으셨는데 전하께서는 넓게 하시며, 선왕께서는 백성을 병들게 하지 않으셨는데 전하께서는 병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궁궐은 이미 엄밀하여 외부 사람이 궁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하는데도 알까 근심하여 어찌 담을 더 높이 두르고 인가를 철거하게 하십니까? 나라가 태평한 지 백년이 되매 인물이 점차 번성하여 성 안의 한치 땅이 금과 같은데 인가를 헐라는 명령이 여러 번 내려 끊일 줄 모르니 다만 도성 안이 소란할 뿐 아니라 사방에서 보고 듣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빨리 인가를 철거하라는 명을 거두시어 사람들의 원통함을 풀어주신다면 더 큰 다행이 없겠사옵니다.

왕은 사헌부의 상소문을 둘둘 말아 입직승지에게 넘겨주고 불쾌한 어조로 말하였다.

"법으로 금하는 한계 안에 집을 지어도 내버려 두던 헌부(憲府)에게 철거령만 가지고 시비하니 옳은 일이오? 상소문에 '성 안의 한치 땅이 금같이 귀하다'하였는데 어찌 땅이 귀하다 하여 불법으로 지은 집을 버려둘 수 있소? 집을 헐리게 된 사람 중에 조사(朝士)도 있고 조사의 족속도 있을 것이니 대간이 간쟁을 벌이면 결국 철거령을 철회할 것이라는 억측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자도 있을 것이 아닌가? 처음에 무명 등을 차등있게 주어 보상하고, 경저(京邸) 같은 곳을 임대하여 우선 이주하게 하고 집은 내년 봄에 헐게 한 것도 겨울에 헐게 하는 괴로움을 생각한 것인데 지금 대간이 시끄럽게 논계(論啓)하니 속히 철거하는 것만 못하오. 유사에 명하여 빨리 철거하도록 하오."

한때 경복궁에 거처하던 인수대비와 자순대비가 창경궁 내전으로 옮겨간 것은 그 무렵의 일이었다.

창덕궁에 거처하고 있는 왕이 경복궁으로 문안드리러 다니기 불편하다 하여 창덕궁과 맞붙은 창경궁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역대 왕비들이 거의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였듯이 인수대비와 자순대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 대비들이 복세암을 비롯한 여러 원찰(願刹)에서 선왕이라는 이름의 망부(亡夫)의 명복을 비는 기신재(忌辰齋)와 갖가지 구실의 불사를 올리는 데 쏟아 붓는 비용이 거만인데 명목상으로는 사재(私財)이지만 그 모두가 사실을 국고에서 나가는 것이었다.왕의 할머니인 인수대비의 원찰인 인왕산의 복세암도 헐리게 되었으니 대비가 가만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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