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윤도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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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일본의 도쿄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곳은 어떤 분위기이고 그들의 눈빛은 어떨까하는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대를 너무 크게 가져서인지 막상 대학의 상징인 `아까몽'(赤門)을 들어서자 오가는 학생들의 표정이나 모습 어느 하나도 우리 학생들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첫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밥을 퍼 주는 배식구 옆에 수박을 가지런히 잘라 놓은 큰 접시가 있었고, 먹고 싶은 학생들은 한 조각씩 가져가는 것 같았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밥을 받은 뒤 수박을 한 조각 내 식판에 올렸다. 그러자 밥을 퍼 준 아줌마는 안된다고 손을 가로저으며 수박을 도로 내려놓으라는 손짓을 했다.

이유도 물어 볼 사이 없이 수박을 다시 접시에 놓고 돌아와 밥을 먹었지만 "왜 나만 수박을 못먹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 먹은 뒤 식당의 매니저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수박은 배가 부르거나 하여 밥을 적게 달라고 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며 밥을 제대로 다 받는 경우엔 수박을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사에 빈틈없고, 분수를 지키고, 정도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그들의 정신이 모든 생활 도처에 스며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한 올 노벨 화학상 수상자 다나카 고이치의 언행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드러내지 않는 착실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지방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43세의 평범한 지방 중소기업의 주임인 그는 일상을 작업복 차림으로 더 많이 지내는, 겉으로는 매우 평범한 일본 사람임에 틀림없다. 무엇 하나 노벨상과 연관지어 볼래야 볼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이다.

어쩌면 "노벨상 수상식 연회장에서 추어야 한다는 춤도 출 줄 모르고, 나나 부인이나 그런 곳에 입고 갈 옷도 없다"는 그에게 노벨상은 너무 거추장스러운 수사(修辭)인지도 모른다.

다나카 주임의 노벨상 수상 덕분에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기업이 됐으며 주가가 급등하는 엄청난 반사이익을 얻게 된 시마즈제작소는 그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노벨상 다나카연구소'를 설립키로 하고, 그를 소장으로 임명하면서 이사대우로 승진시키려 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높은 직급을 받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극구 사양, 회사를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소식은 신선미를 더해줬다.

또한 "노벨상 수상 연구내용을 논문으로 쓰면 박사 학위도 받을 수 있다"는 동료들의 말에 "논문 쓸 시간이 있으면 연구를 더 하겠다"는 그의 대답은 허례허식을 배격한 철저한 장인정신이 몸에 밴 전형적인 일본인의 기질을 보여줌을 알 수 있다.

그는 오로지 회사의 필요에 따라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공도 아닌 화학분야의 실험에 매달려 온 것이 `단백질 질량분석'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업적을 내게 했고, 급기야는 전무후무한 학사 출신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전후 최고의 전성기였던 쇼와(昭和)시대에 뒤이어 1989년부터 시작된 헤이세이(平成)시대의 장기불황으로 극도의 상실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는 일본인들에게 `보통사람' 다나카의 노벨상 수상은 `자존심의 회복'이라는 커다란 힘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치 월드컵이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자긍심을 안겨 줬듯이 말이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허황됨을 좇지 않으며, 기본을 충실히 하는' 일본인들의 생활태도에 박수를 보내면서, 다나카 주임의 노벨상을 계기로 우리도 우리의 삶의 태도를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에게도 보통 사람의 노벨상 시대가 그리 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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