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백제땅 일부 식민지배 정당화 논리 대응

▲ 백제의 유물뿐 아니라 중국제 유개청자사이호, 흑유도기 등이 발굴된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4호 석실분. <우희철 기자>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에서 발굴된 백제고분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백제 역사 재조명과 함께 웅진(공주의 옛 지명)의 위상을 돌아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백제는 신라와 고구려에 비해 문화·역사적 가치 면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했으며, 일부는 왜곡·축소되기도 했다는 것이 백제사 연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수촌리 백제고분 발견을 위해 신라, 고구려, 마한 등에 치여 빛을 발하지 못했던 백제사의 커다란 획을 그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확신을 주고 있으며, 충청인들에겐 우리 지역 고대 문명에 대한 자부심을 부여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학계에서 백제는 자국 내에서도 정치력 등이 약해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으며, 전라남도 등 남부 지방은 가야 토착민들이 중앙의 큰 간섭을 받지 않았다는 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익산, 나주 등에서 발견된 금동유물 등은 백제의 유물이 아닌 가야의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충청권에 발판을 둔 백제에서 이 같은 유적 발굴이 없다는 사실은 '백제문화'라는 의견을 제시해도 이렇다 할 증거가 없는 관계로 힘을 얻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수촌리에서 발굴된 금동유물은 백제의 유물임이 확인되고 있으며, 나주 등에서 발견된 유물과도 흡사해 백제가 지방호족 등을 장악하기 위해 온건책으로 하사품 전달이라는 정치적 방법을 사용, 백제영토 곳곳에 정치력과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또 공주 호족에게 왕의 하사품이 전해진 점은 웅진이 백제시대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백제의 왕권은 한성과 떨어져 있는 웅진을 다스리고, 웅진지역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호족을 포섭하기 위해 금동관모와 신발 및 환두대도를 하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왕권과 지방호족간 긴밀한 정치적 관계는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고 도읍으로서 조건이 좋지 않았던 웅진에의 천도를 가능케 했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발굴단은 설명했다.

게다가 이번 발굴은 3세기경 일본이 외국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로 발전한 고대문명을 지녔다는 논리로 백제 등 한반도에 자국의 문화를 전파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일본이 집요하게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은 제국주의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부당한 논리로 수촌리 발굴은 당시 백제의 정치력이 지방까지 미쳤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남식 공주대박물관장은 "이번에 발굴된 유적 및 유물들은 백제사 연구는 물론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을 잠식시킬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무령왕릉의 출토품 만큼 큰 가치를 지닌 백제의 유산"이라고 밝혔다.?
<이은춘 · 박병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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