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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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2)

"여보 마누라, 박서방네는 무슨 경저(京邸)를 세 얻어 간다는구먼. 우리도 우선 그리 따라갑시다."

"나라에서 집은 내년 봄에 헐으라고 하니까 해동(解凍) 때까지 어디다 집터를 마련해서 뜯어다 지으슈."

"무슨 소리요? 땅을 빼앗으면 새로 집을 지을 땅을 나라에서 주어야지 않소?"

"힘없는 당신들만 쫓겨나는 줄 아오? 양반들까지 쫓겨나는 판국이라오."

시비와 한탄과 아우성이 그치지 않았다.

사헌부 집의(執義) 이계명이 상소하였다.

<백성이 나라에서 금지하는 한계(限界) 안에 집을 지은 것은 원래 그른 일이나 부조(父祖) 이래로 전하여 온 지가 벌써 오래이니 하루아침에 철거함은 마땅치 않습니다. 옛 반경(般庚)이 은(殷)으로 옮긴 것은 해로운 데를 피하여 이로운 곳으로 간 것이지만,? 모두 원래 살던 곳을 편안히 여겨 옮겨가려 하지 않았는데 더구나 이 추운 겨울에 백성의 집을 빼앗아서 되겠습니까? 송(宋)나라 조빈(曹彬)은 사는 집이 퇴락하여 자제들이 수리하기를 청하니 대답하기를 '이렇게 추울 때는 담장과 벽, 기와, 돌 틈 사이에 온갖 벌레가 움츠리고 있으니 집을 헐 수 없다'하였다고 하옵니다. 조빈은 움츠리고 있는 벌레 때문에 집을 수리하지 않았으니, 엄동설한 백성의 집을 철거하는 분은 인군으로서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왕은 이계맹의 상소문을 읽어보고 승지를 통해 답을 내려보냈다.

<백성이 집을 헐리고 원망하여 근심하는 정상을 과인이 왜 모르겠는가? 허지만 무지한 백성들뿐 아니라 사리를 아는 조사(朝士)들까지도 많이 국법을 어기고 집을 지었는데 헌부(憲府)에서 죄주기를 청하기는커녕 도리어 두둔하는 것인가.>

왕의 답변이 그러하매 사헌부에서는 다시 장문의 글을 올려 간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송나라 신하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백성은 우리 동포요, 만물은 나와 함께 한다'고 하였습니다. 넓은 세상이 모두 우리 대궐 안에 있는 것이니 제왕으로서 백성들을 모두 그 바라는 바를 따라 인도하고, 그 천성에 따라 인정되게 하여 한지아비와 지어미도 모두 제자리를 잡아 편안히 지내게 하여야 하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저들의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어 저들의 심정을 거슬린다면 어찌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 궁궐 담장 밖 가까운 곳의 인가를 철거하는 것이 무려 백여 곳이나 됩니다.

궁장(宮墻) 밑 백자를 한계(限界)로 정하였다지만 조종조 이래로 두 대궐 궁장 밖에 인가가 즐비하고 다만 한 발 가량의 땅을 막아서 연기와 불이 통하지 않게 금하였을 뿐이옵니다. 선왕께서인들 어찌 그 규모를 더 크게 하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마는 백성들이 이주(移住)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길까 염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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