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준 기상캐스터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렇다. 최소한 나의 금연 역사는 1988년 12월 31일 밤부터 시작됐다. 방송국에서 밤 11시 뉴스를 마치고 집으로 오던 차 안에서 내년 1월 1일, 즉 내일부터 당장 담배를 끊자는 결심을 했다.

신정 연휴 이틀 동안을 집에서만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금연은 3일째가 가장 힘이 들었다.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머리가 멍하고 잠을 이틀 동안 충분히 잤는데도 계속해서 피곤하고 눈에는 없던 쌍꺼풀까지 생겼다.

또한 일손이 잡히질 않아 안절부절하고 특히 식사 후와 커피를 마신 뒤에는 1∼2시간가량 앞이 안 보일 정도여서 수시로 숙직실에 가서 환자처럼 드러누웠다. 물론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모두가 이른바 '금단현상'이었다.

그렇게 1주일쯤 지나자 이제는 하루하루가 24시간처럼 제대로 느껴졌다. 몇 주일쯤 더 지나자 차츰 여유가 생겨 주변 동료들에게 담배를 끊었다고 자랑하고 담배를 끊고 나서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다.

남에게 내가 담배를 끊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는 문뜩문뜩 내가 자랑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제 금연의 다음 관문을 통과할 차례다. 바로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꾹 참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당시만 해도 방송사 기자들은 거의 모두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고, 술자리에 가면 담배 연기는 더욱 더 자욱해져 내 의지를 시험하기에 알맞은 조건이었다.

술자리 금연시험 역시 가볍게 통과했는데 평소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셔도 전혀 취하지 않는 것이 특이했다.

금연 두달째가 되자 검은 가래가 점차 회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석 달째부터는 아예 하얀 가래 또는 투명한 침으로 나왔다.

17년 동안 내 몸에 쌓여 있던 검은 가래가 모두 몸 밖으로 나온 것인가. 6개월이 지나니까 쌍꺼풀도 없어지면서 금단현상이 거의 사라졌다. 다만 손에서 나는 담배 냄새는 그 후 몇년 동안 구수하게 지속되면서 끝까지 나를 유혹했는데 손가락에 밴 담배 냄새는 10년은 지나야 없어지는 것 같았다.

금단현상은 없어졌지만, 금연 이후 5년째까지도 가끔은 담배 피는 꿈을 꾸었는데, 잠에서 깨어나 허망한 생각으로 주변을 돌아보다가 담배 핀 흔적이 없으면 다시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다.

사실 나는 금연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 금연방법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후에 보니까 금연을 하기 위해서 금연초를 피우거나 주사를 맞거나 침을 맞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금연교실에 가서 비디오 등을 보면서 금연을 시도한다.

그런데 금연방법 중 물리적인 처방 없이 자기 스스로 담배를 끊으면서 자신을 수없이 칭찬하는 이른바 '자기 확신법'이 있다고 하는데 내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때부터는 스스로에게 '너 정말 잘했다. 앞으로도 잘 할거다' 하는 말을 셀 수 없이 속삭였다. 그리고 틈만 있으면 주변 사람에게 금연을 권유하고 대중 강연 때는 꼭 금연 경험을 언급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금연을 꼽는다. 그동안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담배를 다시 피우지 않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자제력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흔히들 속상하다고 해서 담배를 다시 피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요,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금연은 건강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력의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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