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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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1)

창덕궁 후원 동쪽 담장 밑의 김철문 등 14인의 집 및 경수소(警守所=순라군이 밤에 숙직하는 곳) 하나, 서쪽 담장 밑의 장 명 등 62인의 집 및 경수소 넷, 함춘원(含春苑) 남쪽 담장 밖 한계선 등 14인의 집이 철거 대상이며 혹 조사 대상에서 빠진 가구가 있으면 추가로 조사하여 아뢰겠으며 경복궁 밖의 철거 대상 가옥은 아직 조사하지 못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철거 대상 가옥을 대·중·소·소소가(小小家) 등 4등급으로 나누어 대가에는 무명 50필, 중가에는 30필, 소가에는 15필, 소소가에는 10필씩을 보상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덧붙이기를 철거민의 이주할 곳으로는 도성 안의 경저(京邸=지방의 서리와 서민이 올라와 머물며 지방과 중앙의 사무연락 및 대행을 하는 곳)와 빈집을 원하는 대로 임대하여 거처하게 하고, 만일 임대하려고 하지 않으면 나라에서 독려한다는 것이었다.

왕은 그리하라고 재결하였다.

기한을 정하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아무개의 집을 비롯하여 몇 가호를 철거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담을 높이거나 울타리를 쌓고, 어디에는 경수소(警守所)를 설치하여 밤낮으로 입산(入山)을 금하라는 등의 어명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병조와 공조, 한성부에 내려갔다.

새로 철거 대상이 된 것은 타락산 밑 조영철의 집 등 백여 가호가 넘었고,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는 인왕산에 있는 복세암(福世庵), 인왕사, 금강굴 등 사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가의 철거는 물론 입산 금지된 산은 목멱산, 백악산, 인왕산, 사직산, 타락산 등등 궁성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산이 대상이었다.

동짓달 20일까지 기한으로 철거령이 내린 창덕궁 돈화문 동쪽에서 단봉문까지 궁담밖에 밀집해 있는 20여 채의 민가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을 타고 현장에 나온 병조판서 강귀손과 한성판윤 방숭질의 독려를 받으며 장졸들과 관리 등이 기세등등하게 호령을 하며 설치고 돌아다녔다.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 관리와 맞서 싸우며 고래고래 악을 쓰는 사내 등, 솥과 이불 따위 가재도구를 챙겨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울며불며 쫓겨나는 군상(群像)들로 뒤엉켜 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엊그제까지만 해도 봄날같이 푸근하기만 하던 날씨가 하필이면 집을 쫓겨나는 날 왜 이리 추운고!"

"아이고머니, 이 추운 엄동설한에 자식새끼들하고 어디 가서 살라고 집을 비우고 떠나란담. 어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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