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283자 쌀 한톨에 새겨넣어

▲ 김대환 음악가·서예가

"태안 '진정'에서 죽기 전에 꼭 한번 공연을 하고 싶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그 곳에서 말이야."

흑우(黑雨), 여수(如水) 김대환(71) 교수는 태안군 남문리가 고향으로 세계적인 드럼 연주가이자 세각(細刻)의 장인인 '한마디로는 표현이 어려운' 우리시대 예인이다.

김 교수는 13세부터 북을 치기 시작해 한국 대중음악계의 별인 조용필, 신중현씨 등과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고 해외공연을 통해 일본, 유럽에서 '신비의 소리'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지난 90년에는 쌀 한 톨에 반야심경 283자 전문을 새겨 넣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인물이 김 교수다. 그러면서도 대중매체 앞에 나서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공연을 고집하는 '영원한 소수자'라고나 할까.

김 교수를 만난 것은 지난 14일로 서울 홍지동의 자택과 인사동의 공연장을 겸한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김 교수의 홍지동 2층 자택은 대형 태극기가 밖에 걸려 있고 작업실과 음악 연습실, 소규모 서체 박물관 등으로 꾸며져 있는데 집 자체가 '관광코스'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박물관만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집이 한국에서 관광코스야. 요 위쪽에 가나아트센터(평창동 소재)를 거쳐 우리집에 들르는 거지."
김 교수의 자택 작업실은 초겨울임에도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냉방이었는데 김 교수는 트레이닝복에 꽁지머리 차림으로 '글씨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김 교수 자택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글씨들은 폭이 2m가 넘고 길이가 10m에 이르는 검은 커튼에 반야심경이 10만자나 들어 있다. 김 교수가 "중간중간에 있는 글씨를 보라"고 해서 살펴보니 '대(大)', '애(愛)' 같은 글자들이 크게 써져 있다. 서예평론가 정충락씨에 따르면 김 교수의 글씨는 '쓰는 것'이 아니라 '새김질'이다. 새김질은 '각(刻)'이지만 정씨는 김 교수의 글씨를 '각(覺)'이라 표현하며 깨달음의 경지라고 평가한다. 김 교수가 쓰는 글씨는 미각(米覺), 필각(筆覺), 육각(肉覺)의 단계이며 이 단계를 지나면 음각(音覺)에 이르게 된다. 원래 음악으로 시작한 김 교수의 예술 능력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듯싶었다.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쌀 한 톨 283자의 반야심경 새김'은 확대경으로 봐도 '시커먼 형상'이었지만 컴퓨터가 동원되니 글자가 확연히 보일 정도로 신기(神奇)다. 김 교수는 이런 새김을 하기위해 연장만드는 기간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나는 누구한테 글씨를 배운 적 없이 30여년 동안 써 오고 있어. 그래서 독특하지. 특히 글씨를 우서(右書)가 아닌 좌서(左書)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우서란 우리가 흔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글씨고 좌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글씨를 말하는데 김 교수는 붓글씨를 처음 쓸 때부터 좌서로 글씨를 쓰는 방식을 행했다고 한다.

대형 검은 커튼에 새겨진 글씨를 보니 '정말로' 거꾸로 쓴 글자들의 형체가 많이 보였다.

인사동으로 이동해 만난 김 교수는 고향 이야기를 꺼내자 "내가 태어난 곳이 태안인데 두살 때 인천으로 갔어. 죽 거기서 살아왔는데 사실은 고향을 잊은 적이 없어" 하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1930∼40년대에는 태안과 인천이 배로 반나절 거리였는데 인천에 살면서 태안을 오가곤 했지. 내 기억에 고향 '진정'이 그렇게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4∼5세 적에 정자에서 난간을 잡고 많이 놀았거든. 열흘 전인가 대천에 갔다가 진정에 들렀어. 많이 변해 있어서 그 동네 노인에게 물었더니 그곳이 진정이 맞다는 거야."

김 교수가 이야기한 '진정'은 고향인 태안 백화산 밑에 자리한 정자로 지금도 자리하고 있지만 이름은 달라져 있다.

김 교수는 대학(중앙대 국악대학 타악연희과 즉흥음악과)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지만 학생들에게 음악을 잊으라고 강의한다.?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배워온 음악을 잊으라고 하지. 음악이 아닌 소리를 익혀야 한다고 말이야. 사람이 태어날 때는 순수하지만 자라면서 여러 가지 것을 배우게 되고 배운 것이 자신을 채워버리면 새로운 것들이 나올 수 없지. 비워야 하는 거야."
그가 말하는 인생과 철학, 예술은 '거스르는 가운데 참이 있다'는 '역사상(逆思想)'에 기초한다. 충청도 젊은이들에게 좌표로 삼을 만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자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진(眞)을 추구하지만 역(逆)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악을 선으로 갚고, 미운 놈 떡 하나 주고 하는 게 뭐겠어. 부모님이 '너 아프지' 했을 때 아프면서도 부모님을 생각해 '안 아파요' 하잖아. 세상 살면서 가장 나쁜 게 자기 중심주의야. 인간은 관계를 통해 태어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관계에 의해 죽어. 그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한 거야."?

<약 력> ▲1933년 태안 출생 ▲1975년 한국그룹사운드협회 초대회장 ▲1984년 일본 진출, 현재 500여회 순회공연 중 ▲1990년 반야심경 세서각(細書刻) 세계기네스북 인정 ▲흑우(黑雨) 1집 출반(일본) ▲1996년 중국 베이징에서 할빈 공연, 1997년 유럽 6개국 순회공연 ▲1999년 영국 에딘버러 국제재즈페스티벌 참가, 음악생활 50년 기념 콘서트(일본 동경, 신주쿠 등) ▲2000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 공연, 유네스코 2000축제 참가 ▲2003년 김대환 음각전(音覺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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