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중학생인 손자가 안쓰럽다.

"공부가 힘들지?" 손자는 잠시 제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더니 다소곳이 대답했다.

"예,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공부가 재미는 있니?" 손자는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공부를 재미로 하나요?" 이것이 바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다시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럼 어떡하니?"

손자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이 그렇다. 보통의 경우 공부가 그렇게 재미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공부가 지닌 속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00~2001년 OECD 국가 등 41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이 OECD 소속 21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능력이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다. 공부가 재미가 있다면 알아서 챙길 수도 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여기에다 OECD 국가 가운데 사교육비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발표한 '203개 경제·무역·사회지표로 본 대한민국'이 눈길을 끈다. 그렇게 재미가 없는 공부를 억세게도 잘 시킨다는 얘기와 별반 틀리지 않는다. 실제로 국내 가구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23만9000원이며,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62만7000원을 지출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초등학생 과외 참여 비율은 70.5%, 중학생은 63.9%, 고교생은 48.4%(교육개발원)라는 것이 한국의 실상이다.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이 기(氣)를 펴고 살 수 없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자나깨나 공부타령만 귀가 아프게 듣다 보면 신명나는 일이란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요즘 중고생들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성적 때문에 주눅이 드는 상황이다. 지난주 학교공부에 부담을 느낀 명문대 학생이 자살했는가 하면, 11살난 초등학생이 성적을 비관한 나머지 11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사건은 충격 바로 자체이다. 소녀에게 죽음은 상상만 해도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성적이 뭐길래, 이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 것인지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성적을 비관하거나 입시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여중생이 학업압박으로 물에 빠져 숨진(96.3)일이 있는가 하면 성적을 비관한 여고생이 음독자살(94.9)한 사건 등 비일비재하다. 그런가 하면 '공부 안 한다'는 아버지의 꾸중에 목매 자살한 중학생도 있고, 중3생이 '공부하라'는 꾸지람에 아버지를 찔러 살해하고 말리는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힌 사건(92.8)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끔직한 일을 당하고도 눈 한번 까닥하지 않을 정도로 불감증에 걸린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점이다. 물론 공부나 성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살할 만큼 중요한 일은 절대 아니다. 당사자인 어린 학생들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부모나 학교부터가 먼저 깨달아야 할 성질의 것인 것이다.

배움 그 자체를 입시를 위한 통과의례로 보거나 출세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것부터가 위험하다. '살아 있는 한 줄곧 사는 법을 배우라'고 했던 세네카의 말은 명언이다. 맹자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道)가 있나니,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히 산다고 할지라도 교육이 없으면 새나 짐승에 가까우리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람이 한 세상을 살기 위해 필요한 방편을 다듬는 수단인 것이다. 공부가 아무리 재미없어도 인내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장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것은 자기 하기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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