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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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0)

왕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나무를 목책(木柵)처럼 세워서 우선 사람의 통행만 막으면 되는 것이오."

이극균은 속으로 후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이 말을 계속하였다.

"궁궐 담이 낮은 것은 매우 불가하오. 근자에 응사(應師=매를 기르는 사람)가 죄를 범하고 담을 넘어 달아났고, 선왕조에 도둑이 담을 넘어 신경당(信敬堂) 근처에 들어 온 일이 있었소. 불초한 자들이 '임금이 울타리를 치고 그 속에서 놀이를 한다더라'하고 말을 지어내는 모양이지만 놀이를 하려면 어찌 꼭 울타리 속에서만 할 것이오? 쓸데 없이 추측으로 임금을 비방하는 말은 시비할 것이 없소. 만일 안담을 새로 쌓으면 공력(功力)이 많이 들고 폐해가 클 것이나 예전대로 높이 쌓기만 하면 공력은 적게 들고 효과는 배나 클 것이오. 창덕궁은 물론 경복궁도 함께 수리하도록 하오."

왕의 명령은 궁궐 담을 높이 쌓으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이튿날 승정원에 내린 전교는 이러하였다.

<궁궐 담장 밑 백자 안(百尺內)과 내려다보이는 곳에 민가를 지을 수 없는 것은 이미 법으로 금한 것이다. 금법을 무릅쓰고 집을 지으면 유사(有司)에서 그때그때 아뢰어야 할 것인데 덮어두고 있으니 이는 임금을 업신여기는 나쁜 풍습 때문이다. 재상이나 조사(朝士)가 모두 임금을 위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부동하여 태만하게 금하지 않는 것도 그르고, 국법을 무서워하지 않고 금지(禁地)에 집을 짓는 자 역시 참으로 그르다. 전에 집을 헐린 사람으로 원망하는 말을 하는 자도 있었다고 들었지만 사리를 아는 자라면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전에도 대궐을 내려다보는 집들을 철거하려다가 재상과 대간이 민폐니 민원이니 말이 많아 중지한 일이 있었는데 만일 궁궐 담장 밑과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을 지어도 좋다고 내버려둔다면 궁궐도 반드시 엄숙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내외(內外)도 반드시 분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병조, 공조, 한성부 당상이 집주인들을 불러모아 철거할 뜻으로 미리 효유하는 것이 승지들의 의견에는 어떠한가? 한성부로 하여금 철거할 집의 가구주의 이름과 가구수를 조사하여 아뢰게 하되 지금 겨울이 한창이어서 집을 헐기가 어려우니 우선 집을 비우게 하고 인구를 수색해서 출입을 금하였다가 오는 봄을 기다려 철거할 것이며 집을 비운 백성들에게는 들어가 거주할 곳을 마련해 주라. 그리고 넉넉히 줄 수는 없으나 철거할 집의 크기에 따라 차등(差等)있게 무명을 나누어 주어 나라에서 휼민(恤民)하는 뜻을 알게 하라.

병조판서 강귀손(姜貴孫)과 한성판윤 박숭질(朴崇質) 등은 추위를 무릅쓰고 관원들을 현장에 보내 철거 대상 가구주와 가구수를 조사케 하고 철거민들에게 지급할 무명의 수량을 책정하여 왕에게 계달(啓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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