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지구당 존폐 뜨거운 감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5개월 앞으로 다가 오면서 정치권에 격랑이 일고 있다. 정치개혁 요구가 거세지자 기득권 세력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반면, 신진세력들은 금배지를 거머쥘 수 있는 호기로 삼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선거구제 개편 및 지구당 폐지 여부를 놓고 정치개혁안 심의에 본격 착수했다. 정치개혁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듯한 지구당 존폐를 둘러싼 정치권의 양면을 짚어본다. <편집자 註>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지구당 존폐 등을 골자로 하는 4당의 정치개혁안이 최종 확정됨에 따라 이번주에 2∼3차례 회의를 열어 주요 쟁점과 공통사항을 추려낸 후, 특위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에 넘길 계획이다.

하지만 지구당 및 후원회 폐지, 선거구제, 인구 상·하한선, 국회의원 정수 등 핵심 사안을 놓고 각 당은 물론 의원간에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합의안 도출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지구당 폐지 대신 연락소를 설치하기로 해 사실상 '옷만 갈아입은 지구당'이 될 소지를 남겨두고 있으며, 민주당은 중·대선거구제를 전제로 지구당 폐지를 내걸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2년 임기의 지구당 운영위원장제를 주장하고 있어 당초 폐지 약속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활동시한인 연말까지 이를 처리해야 하지만, 이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에는 해를 넘길 가능성도 커 난항이 예상된다.

존치론=소선거구제 하에서 지구당은 지역민의 민의를 수렴하는 최일선 창구라는 점에서 대의정치의 핵심적인 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구당을 폐지할 경우 효율적인 조직관리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당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12일 대전·충남지역 언론인과의 만남에서 "지구당 폐지는 실현될 수 없다"고 전제한 후, "지구당을 폐지하면 정당의 기초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정당 제도가 바로 설 수 없다"고 규정했다.노 대통령은 또 "당원 없는 지구당이 어디 있으며, 지구당 없는 중앙당이 있을 수 있느냐"며 지구당 폐지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염승철 전 민주당 유성지구당 사무국장은 "지구당을 없애면 당원접촉을 어떻게 할 것이며, 지역현안은 누가 챙길 것이냐"면서 "금배지를 달기 위해 전쟁을 하는 현 실정에서 지구당을 없앤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존치론을 주장했다.

염 전 국장은 "일부 정당에서 도입한 관리형 운영위원장제를 자세히 뜯어보면 측근을 대의원에 앉혀 놓는 등 종전의 지구당 운영위원장제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소선거구제 하에서 지구당을 없애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못박았다.

폐지론=정당의 최일선 조직인 지구당은 불편부당한 민의를 수렴하고 지역 내 갈등 및 숙원을 해결하는 창구라는 사실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구당이 위원장의 지역구 관리용 사조직처럼 운영되면서 고비용·저효율 정치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현재 대전·충남지역 원·내외 위원장이 지출하는 지구당 운영비는 월평균 2000만원 안팎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구당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무국장과 여직원 등 상근 직원의 인건비는 물론 건물 임대료 및 전화세 등 관리비, 각종 경조사비 등으로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당위원장은 의정활동 대신 상가나 잔칫집, 각종 모임과 행사를 좇아다니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른바 '돈먹는 하마'로 불리는 지구당을 폐지해 위원장의 사적 부담을 줄여주고, 고비용·저효율 정치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위원장의 지구당 내 독점적 위치는 정치 신인의 제도권 정계진출을 봉쇄하고,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당사자가 돼 왔다. 실제 지구당위원장들은 대의원의 대부분을 '자기사람'으로 심어놓고 각종 의결권을 좌지우지 해 온 것도 지구당위원장제의 폐해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에 따라 지구당 대의원들이 위원장의 친지나 충성파 측근으로 구성돼 있는 한, 아무리 상향식 공천을 도입하더라도 현역 위원장이 계속 공천을 장악할 수밖에 없다. '철밥통 지구당위원장'이라는 자탄도 이 같은 논리 때문에 생겨난 조어(造語)라 할 수 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아무리 상향식 공천을 도입해도 현 지구당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나는) 90세까지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며 폐해론을 지적한 바 있다.

김칠환 한나라당 동구지구당 위원장은 "경조금품은 1만5000원 이내에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기간당직자들에게는 손 부끄런 일"이라며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봉투를 낸 후 전화를 걸어 선거법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해야 하는 제도부터 뜯어고치고, 궁극적으로는 지구당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망=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각 당의 개혁안과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의 안이 나오는 대로 특위 활동시안인 올 연말까지 지구당 폐지, 선거구제 개편 등을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그러나 각 당이 제출한 지구당 개편에 대한 개혁안을 보면 ▲한나라당= 지구당 폐지 및 선거사무소 설치 ▲민주당=17대 국회 중 지구당 폐지 ▲열린우리당= 17대 총선 이후 폐지(단 이번 총선은 후보가 아닌 운영위원장 체제로 운영) 등 의견을 달리하고 있어합의안 도출까지는 적지않은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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