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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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19)

"요즘 날씨가 포근하여 봄날 같사옵니다마는 동짓달로 접어들었사오니 집을 헐리고 오갈 데 없는 가엾은 백성들의 처지도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쌀이나 무명 같은 것으로 집값의 얼마라도 보상을 해 주시든지 옮겨가서 살 곳을 마련해 주시는 것이 어진 임금의 선정일 것이옵니다."

"하하하, 녹수가 기특한 말을 하는구나. 과인이 인군(仁君) 소리 듣기는 이미 글렀다마는 너의 말을 참작하겠노라."

포근한 햇살에 감싸인 모옥의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뜰에서는 무희들이 어지럽게 현란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명을 받고 승정원으로 달려갔던 내시 김자원이 되돌아왔다.

"전하, 소신 김자원이 복명하옵니다. 전하의 하문에 승지들이 대답하기를 '인가가 높은 곳에 있어서 신 등의 안집을 내려다본다면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하더이다."

"그래? 음, 자기들 안집이 내려다보이는 것은 싫다면서 대궐 후원이 내려다보이는 것은 무방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터이지."

왕은 묘책이라도 얻은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며칠 후 왕은 수리도감제조(修理都監提調)인 좌의정 이극균을 불러들였다.

"경을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오. 원래 궁궐이란 곳은 엄밀하여 내외(內外)가 현격하여야 함에도 창덕궁은 뒷담이 낮아서 그렇지가 못하오. 바깥사람들이 궐내를 훤히 들여다보지는 못하지만 높은 데 올라가서 내려다보거나 낮은 담 너머로 넘겨다 보니 심히 불경스런 일이 아닐 수 없소. 새로 담을 쌓을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담을 더 높이 쌓는 것이 어떻겠소?"

"대궐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쪽에 안담을 쌓아서 가리는 것이 어떨까 계품(啓稟)하려던 참에 전하의 분부가 이와 같으시니 매우 타당하옵니다."

"배고개를 지나는 사람들이 후원을 내려다보니 배고개에 문을 만들어 일이 없을 때는 항상 닫아두는 것이 어떠하오?"

"배고개에는 성종대왕 때 이미 문을 세우려던 계획이 있었사오나 금기(禁忌) 되는 곳이라 하여 중지한 일이 있었사옵니다."

"금기니 뭐니 가릴 것이 없소. 지대가 높아서 대궐이 내려다보이는 배고개와 반대로 지대가 낮아서 바라다보이는 선인문 아래쪽 담 모퉁이에 각각 정문과 좌우 협문을 짓고 그 양쪽으로 행랑을 지어서 완전히 가리도록 하오."

"전하, 그리하옵는 것이 타당할 것이오나 지금은 겨울이 한창이옵니다. 추운 날씨에 담을 높이는 일도 벅차온데 문을 짓기는 더욱 어렵사옵니다. 우선 산대목(山臺木)을 세워 울타리 대신으로 막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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