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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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18)

어느 포근한 겨울날이었다.

왕은 사랑하는 후궁 녹수(綠水)와 여러 나인과 내시들을 거느리고 후원에 나가 노래 부르고 춤추며 놀고 있었다.

궁담보다 높은 배고개를 지나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는가 하면 선인문(宣人門) 아래쪽 모퉁이에서도 행인들이 목을 늘이고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대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민가가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전하, 경복궁은 어떤지 모르오나 창덕궁은 궁담이 너무 낮아서 탈이옵니다. 언젠가 신첩이 궁담을 높여 쌓고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민가들을 헐어서 전하께서 후원에서 노시는 모습을 바깥 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라고 아뢴 적이 있었사온데. 여전히 대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민가가 있고 배고개를 넘으면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사옵니다. 저기를 보옵소서. 그리고 저기도…."

왕이 무희(舞姬)와 더불어 한바탕 대무(對舞)를 추고 모옥 안으로 돌아왔을 때 녹수가 술을 부어 올리고 나서 한 말이었다.

"그렇구나. 자원아, 이리 오너라."

왕은 내시 김자원을 불렀다.

김자원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방문 앞에 허리를 굽히고 섰다.

"정원(政院)에 가서 승지들에게 물으라. 대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민가를 전에 철거하다가 말이 많아서 중지하였는데, 연내에 모두 철거하는 것이 어떻겠는가고 묻고, 그리고 만일 민가가 경들의 안집을 내려다본다면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고 물어서 대답을 들어 오도록 하라."

"예."

김자원은 돌아서서 총총히 사라졌다.

"전하, 신하들이 불가하다고 반대하더라도 낮은 궁담은 높이고, 궁담보다 높은 데 있는 민가는 헐으라고 엄명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백성들이 국법을 어기고 대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신하들은 백성들의 집을 허는 것을 반대하니 모두가 상감마마를 업신여기는 일이옵니다."

녹수는 자꾸 충동질을 하였다.

"임금을 업신여긴다?"

"전하, 모든 신민(臣民)이 굴복하고 공경하도록 지존의 위엄을 세우셔야 하옵니다. 전하께서 후원에 납시어 궁인들과 어울려 노시는 모습을 백성들이 구경하니 제왕의 체모가 말씀이 아니옵니다."

"으음, 오냐. 내 누가 뭐래도 연내로 궁담을 높이 쌓게 하고 대궐을 내려다보는 모든 민가를 철거토록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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