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또다시 이라크 파병 문제로 시끄럽다. 지난봄 정부는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국익'이라는 명분하에 건설공병지원단 575명과 의료지원단 100명 등 675명의 군대를 파병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가 추가 파병을 요청하자 정부가 또다시 파병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추가 파병 요청은 부도덕한 전쟁의 책임과 군비 부담을 국제사회에 떠넘기려는 술책이다.

미국은 이미 오래 전에 종전을 선언했고 이라크가 평화를 되찾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군이 종전선언 이전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이라크 상황은 매우 나쁘다.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경고했던 것처럼 전쟁의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부도덕성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전쟁 불가피론의 근거가 모두 실체가 없는 여론조작이었음이 밝혀졌다. 증거조작 의혹까지 대두되어 전쟁 주도세력은 궁지에 몰려 있다.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은 명백한 침략전쟁이다. 정의와 자유를 내세웠지만 미국의 속셈은 이라크의 석유 확보와 MD의 정당성 확보였다. 이라크 전쟁은 '해방의 전쟁'이 아니라 '억압과 폭력'이다. 미국의 공격으로 수많은 이라크의 어린이들과 여성, 그리고 시민들이 죄없이 죽어갔다.

미국은 독자적 작전수행 능력을 가진 '폴란드 사단형' 병력 규모의 경보병부대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 소수의 비전투병이지만 우리는 이미 명분 없는 전쟁폭력에 동참했다. 계속되는 게릴라전으로 파병된 비전투병의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투병을 추가로 파병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부당한 점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군 중심의 다국적군 활동은 그것이 유엔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라크 국민들의 저항을 잠재울 수 없으며 평화를 가져올 수도 없다. 전투병 파병은 동티모르의 평화유지활동과 전혀 다르다.

전투병 파병은 부당하다. 막연한 국익 또는 안보논리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주한 미군 재배치, 북핵 문제, 통상 문제 등에서 이라크 파병을 대가로 미국이 우리에게 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파병 거부에 따른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보복에 대한 우려 역시 막연하고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파병이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는 주장이 있다. 전쟁도 싫고 미국의 침략도 나쁘지만 국익을 위해 파병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국익이란 무엇인가. 파병했을 때 우리에게 돌아올 국익은 무엇인가. 파병하지 않았을 때 우리가 당할 불이익은 또 무엇인가. 비전투병 파병에 이어 전투병까지 추가 파병하는 것은 이라크 국민들은 물론 중동지역 국민 전체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는 일이며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김정일이 독재자이며, 북한에 핵 등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무슨 명분으로 세계를 향해 반전을 호소할 것인가. 국회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미국의 부당한 전투병 파병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약력> ▲충남 청양 출생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정치학 박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교수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NGO학회 상임이사 ▲서울행정학회 운영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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