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수

노인은 분명 우리 젊은이들의 어른이다.

길게는 일제 점령기를 거쳐 정부수립, 6·25 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을 지나오면서 정열을 다해 국가와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이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이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면 누구보다도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며칠 전 퇴근길에 라디오를 들었다.

어느 방송사에서 '노인문제'에 대한 대담을 하면서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간 우선 순위를 조사한 결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내용은 1위 주부, 2위 자녀, 3위 애견, 4위 남편, 5위 파출부 그리고 6위가 노부모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금을 있게 해 준 어른들이 가정에서 '애견' 따위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니 매우 걱정되는 내용이었다.

굳이 '효(孝)'를 논하지 않더라도 자식된 자로서 부모를 공경함은 너무도 당연한 이 사회의 전통적 윤리가치라 할 것이다.

부모의 이부자리를 자신의 체온으로 덥혀 드리고, 부모가 부르시면 먹던 음식을 뱉어내고 즉답(父命召唯而不諾, 食在口則吐之)을 해야 한다던 행동 덕목은 고루하다고 치더라도 한 집에서 모시는 일 자체를 힘들어하면서 그것도 애견이나 파출부보다도 못한 대접을 한다면 천인공노할 일이 아닌가?

어떻게 그런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결과를 갖고 전자매체를 통해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명심보감 효행편을 보면 '부모를 공경한 만큼 되받는다, 의심나면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보아라, 항상 일정한 자리에 떨어지지 않는가?(孝順還生孝順子, 五逆還生五逆兒, 不信但看 頭水, 點點滴滴不差移)'라는 경구가 있다.

'씨 뿌린대로 거둔다'는 성경 말씀과 맥을 같이한다고 여겨진다.

자기 부모를 잘 모시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비록 우둔하고 재치는 없어 보일지 몰라도 이 사회의 소금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부모가 병들면 벼슬을 내놓고 낙향해서 부모를 모셨고, 돌아가시면 시묘살이를 했다.

지금의 경제논리로 보면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일인지 모르겠으나 부모의 시신을 3년간 지키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조상님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계신 부모 모시기를 귀찮아하는 오늘의 세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월은 정부가 정한 경로의 달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로정신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많은 행사도 개최하면서 노인들 모시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 달이 지나간 지금은 어떤가 생각해 본다.

대전시는 전국 최초로 노인복지과를 만들고 노인복지 시책을 다양하게 개발, 시행하고 있어 많은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시가 많은 시책을 개발하고 실천한다 해도 시민 각자, 자식된 개개인이 자기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고 이웃 어른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그 성과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경로의 달을 보내면서 내 부모를 내 자식보다 더 사랑하고 정성껏 모시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힘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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