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인생 40년' 이시대 최고 藝人

"충청도 여성들은 올곧고 무한히 한 길을 걷는 정신이 몸에 밴 여성들입니다. 그 '타고남'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법이지요."

중요 무형문화재 39호 처용무의 최초 여성 이수자인 인남순(48) 한국전통문화연구원장은 한국무용의 '외길'을 걸어온 충청인이다.

인 원장은 당진 합덕면이 고향으로 부모님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외가와 친가가 모두 합덕면 출신이라 아직도 당진에 많은 친·인척들이 살고 있으며 1년에 한번 시제도 지낸다고 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오페라하우스에서 옥색 저고리, 붉은 치마 차림의 인 원장을 만나 고향 이야기를 꺼내자 "4남매 중 막내로 서울에서 태어나 실제로 합덕에서 살아 본 기억은 없다. 그 때문에 오빠들이 합덕 이야기를 할 때면 속상해 한 적도 많았다"고 실토한다.

"그럼 고향이 서울 아니냐"고 묻자 대뜸 "한번도 충청도를 잊어 본 적이 없고 매스컴 등에서 서해안 이야기만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니 영락없는 충청인 아닌가요"라며 분명하게 이야기를 받는다.

인 원장은 대전과 충남지역 명사모임인 백소회('백제의 미소'의 준말) 회원이기도 하고 대전, 충남지역에서 공연 의뢰가 들어오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간다고 한다.

인 원장이 무용을 하게 되고 우리 나라 최초의 처용무 이수자로 지정된 것은 선친인 인현성옹의 '뒷바라지'가 컸다. 1955년생인 인 원장은 6·25 전쟁 직후 나라 살림살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옹의 "여성이라도 너는 인생의 꽃봉우리를 스스로 틔어 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당시 한의원을 하던 큰아버지께서 "이 아이는 화관(花冠)을 써야 하는 팔자"라는 말에 5세 때부터 무용을 배워 결국 한국 전통무용의 '일가(一家)'를 이뤘다.

아주 어린 나이에 무용을 익힌 덕분에 인 원장은 중학교 재학 당시 같은 중학생을 교육(?)하는 강사 역할도 했다. "제가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일반 중학교 과정)에 다닐 때인데 합덕여중에 계신 외사촌 언니가 그 학교 학생들의 무용강습을 부탁했어요. 강습을 하고 강습료까지 챙겼으니 영락없는 '꼬마 강사' 역할을 한 셈이지요."

한복이 잘 어울리는 인 원장이지만 서구적 마스크도 함께하고 있어 '굳이' 한국무용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묻자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충청도 가정에서 태어나 맨살 드러내는 서양무용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웃어 보이며 "한국무용을 평생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다시 무용을 한다면 외국 무용도 해 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인 원장은 한국무용의 세계화를 위해서 그동안 끊임없는 노력을 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인 원장은 1997년 하버드대학을 '누구의 도움 없이' 방문해 "우리 춤과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열정을 보였고 그 해에 공연뿐만이 아닌 워크숍을 열어 하버드대 총장, 부총장, 하버드 대학생들이 어우러지는 한마당을 열기도 했다.

지난 2000년 6월에는 미국 카네기 메인홀에서 북춤, 살풀이, 태평무, 영산제, 이매창의 춤과 소리 등을 공연했고, 2002년에는 링컨센터에서 공연했다. 올해는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지난 3월 시카고, 뉴욕, 뉴저지, 워싱턴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내년엔 아카데미 수상식 극장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코닥극장에서 펼칠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 원장의 우리 춤에 대한 대중화 열정은 끊임없이 이어져 '국립민속박물관 우리민속한마당', '덕수궁 한국? 전통문화 예술제', 통일전망대 공연 등이 10년 이상 매주 공연되고 있다.

또한 궁중가, 무, 악, 음식, 복식, 의례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 조선왕조 궁중연회를 의궤를 바탕으로 2000년 순조 자경전 진찬, 2001년 고종 함녕전 내진연, 2002년 세종조 회례연 등을 악학궤범을 토대로 최초로 재현하였으며 지난 9월에는 영조 갑자 진연을 1744년 열렸던 경희궁에서 재현해 궁중문화의 예술사적, 학술사적 연구에 큰 획을 그었다.

인 원장은 내년엔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공연할 것을 계획하고 있으며,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300여권의 의궤는 꼭 돌려받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도 내보였다.

인 원장은 세계 속에 한국을 심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공연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개인 차원으로는 상당히 버거워 보였다. 그의 표현대로 '질르고' 나서는 경우가 많아 손익계산을 따져 볼 필요도 없이 마이너스다.

그러나 인 원장은 "어떤 해는 10개월 정도를 해외에서 보냈는데 애들한테는 정말 미안하지요. 그러나 21세기에 한국을 세계 속에 심기 위해서 전 세계 유수대학 및 세계적인 극장을 돌며 우리 문화를 이해시키는 데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라며 씩씩하게 답한다.

'내디딘 발은 결코 뒷질치지 않는다'는 인 원장에게 충청도 여성들에게 도움말을 해 달라고 했다.

"제자들 중에서 충청도 출신도 상당수 있는데 10∼20대에는 천방지축이기도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인내심, 예의범절, 남에 대한 배려 등 충청도 특유의 정서가 나타나지요. 그런 점에서 이미 충청도 여성들은 그 핏줄 속에 근본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한히 한 길을 파고 그 길을 지속하는 정서 말이지요."?

<약 력> ▲한국전통문화연구원장 ▲중요 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이수자 ▲국립민속박물관 공연위원 ▲덕수궁·남산 한국전통문화예술제, 통일전망대 '하나를 위하여' 예술감독 ▲MBC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 KBS '용의 눈물', '왕과 비', '왕건' 등 무용 고증 및 안무 ▲국악방송 '인남순의 전통문화 이야기' 진행 ▲저서 '여령정재홀기' 국역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