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왕무 배재대 교수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로 유명한 에바 페론(애칭 에비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한 번도 여러분을 떠난 적이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서른 셋의 나이로 요절한 에비타가 다시 깨어나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영원한 국모(國母)인 그녀가 죽은 지 꼭 50년이 되는 올해, 그녀에 대한 추모의 열기로 아르헨티나 전역이 뜨겁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한몫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민중들이 과거의 `페론주의'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후안 페론의 이름에서 유래한 페론주의는 빈민대중을 기반으로 `노동자의 천국'을 만들려는 포퓰리즘(대중인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생아 출신인 에비타와 재혼한 후안 페론은 농민과 노동자의 지지를 바탕으로 1946년 대통령에 취임했고, 페론주의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다. 그러나 에비타가 페론 정권의 실세로 급부상했고, 포퓰리즘에 있어서 페론보다도 한술 더 떴다.?

그녀는 노동, 보건, 자선 분야의 일을 관장하면서, 수천개의 병원과 학교, 고아원과 양로원을 세우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줬다. 아르헨티나는 노동자들의 천국이 됐고 에비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녀의 인기가 어찌나 높던지 페론마저 그녀의 인기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1951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그녀를 부통령 후보로 옹립하려는 운동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에비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아르헨티나 지식인들은, 장기적인 발전을 염두에 둔 투자를 무시하고 단기적 인기에 영합하는 에비타의 포퓰리즘이 현재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비판한다. 물론 근로자의 후생복지를 개선하고 계층간의 빈부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생산성과 장기 발전전략 없는 일시적 대중인기주의는 결국 후대에 이르러 더욱 큰 고통과 비용을 감수하게 된다는 사실을 아르헨티나의 예에서 교훈을 삼아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표'와 `인기'를 의식한 정치가 두드러지고 있다. 가까운 예만 들어보자. 월드컵 4강에 오르자 즉시 공휴일을 지정하고 국민대축제를 열더니, 교통법규 위반자 481만명을 사면하는 `아량'을 베풀고, 그것도 모자라 신용불량자 50만명을 사면했다. 그 결과 음주운전 등 교통법규위반 단속 불응과 경찰관 폭행, 파출소 내 행패 등 공권력 경시 풍조가 만연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너무 잦은 사면 복권으로 정부 스스로가 법의 권위와 형평성을 무시한 탓이다.

요란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고, 국가부채는 늘어나는데 대형 국책사업이 제시되고, 권력층 비리와 부패는 계속 증가하는 것이 어째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인기 영합성 선심정책을 경계해야 한다. 아직 검토단계에 있기 때문에 시행시기가 막연할 뿐 아니라 실현가능성 자체가 불확실한 정책, 예산확보 방안이 분명치 않은 정책, 말만 그럴 듯하고 실제로 국민들에게 실효성이 없는 정책,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되풀이돼 온,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정책 등은 대개 선심정책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이런 점을 국민들이 눈여겨 봐야 하는 이유는, 이제 바야흐로 대선 정국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대선을 맞이해 각 정당간 정책과 공약이 난무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진정으로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정책과 공약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나라가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위기 반복형 체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에비타를 위해 울어서도 안 되며, 한국판 `에비타'를 그리워해서도 안 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