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케로스'는 지금은 거의 지구에서 사라진 사슴과의 동물이다. 뿔이 체구에 비해 너무 무거워 운신하기가 힘든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능력과 자격이 모자란 사람이 과분한 감투를 쓴 경우 '메가케로스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메가케로스'의 또 하나 특징은 성질이 사납고 싸움을 좋아 하는 것이다. 한번 싸움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 마는데 그 무거운 뿔을 갖고 싸우다 보니 스스로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다. 결국 자기 죽음을 재촉하는 싸움임을 알면서 미련하게 싸움에 몰두하는 사람을 '메가케로스'라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메가케로스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유난히 싸움을 좋아하는 것 같다.

도산 안창호(安昌浩) 선생이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였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거리를 지나다 같은 한국사람 둘이 서로 엉겨 싸우는 모습을 발견했다. 머리는 상투를 하고 있었고 얼굴은 코피가 터져 엉망이었으나 미국인들은 그들의 싸움을 호기심있게 구경하고 있었다. 안창호 선생은 그들 속에 뛰어들어 싸움을 말리며 소리쳤다.

"여보시오. 나라를 잃은 부끄러운 백성이 남의 나라에까지 와서 싸움질을 하다니 이게 무슨 꼴이오."

결국 싸움은 그쳤지만 안창호 선생은 이때의 부끄러운 한국인의 모습을 평생 씻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왜 우리는 대화로 안 되고 싸워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선생이 목격했던 그 부끄럽고 꼴사나운 모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선량이라는 사람들이 멱살잡이를 하고 시의회에서도 주류·비주류로 나누어 추잡한 싸움을 한다. 교회도 싸우고 스님도 싸운다. 지식인이라는 교수, 선생님, 예술가들의 싸움은 거리 불량배 싸움보다 더 치사하다. 무슨 조합장 선거만 있으면 온 동네가 모두 싸움판이 된다. 집회나 시위를 하면 으레 폭력을 휘둘러야 하고 재산을 두고 아버지와 자식, 형제가 벌이는 싸움은 너무 처절하다. 더욱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며 정말 동족끼리의 큰 싸움판을 벌일 듯 공갈치는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는 전체가 싸움판을 방불케 한다. 그래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안창호 선생 같은 지도자가 있어 싸움을 말렸지만 우리는 지금 싸움을 말릴 국민적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도자가 없다.

인도 역시 우리나라 사람처럼 영국과의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싸움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들은 다행스럽게 간디 같은 지도자가 있어 싸움을 말릴 수 있었다.

1921년 2월 인도의 '차우리 차우라'라고 하는 마을에서 폭동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경찰관에게 인도사람이 폭행을 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경찰서를 습격하여 영국 경찰관 7명을 살해한 것. 폭동은 인도 전역으로 번져갈 기세였다. 이때 간디가 나섰다. '싸움을 멈춰라' 그러자 인도 사람들은 도대체 간디는 영국편인가, 인도편인가 하고 당황했다. 그러나 간디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여 선동을 했으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영국이 무력을 사용할 구실을 주었을 것이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오고 그것이 영국이 노리는 함정이었으니까….

결국 인도 국민들은 간디의 비폭력운동을 받아들였고 그것은 인도의 독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왜 우리는 싸움을 말릴 간디 같은 지도자, 국민적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없는가? 가슴이 답답하고 마냥 이렇게 싸움판을 즐기다가 '메가케로스' 같은 운명을 겪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