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광

언제나 한가위같기만 하라는 옛말은 간 곳 없이 제14호 태풍 '매미'로 인해 우울한 명절이 되어 버린 추석 연휴.

남해를 관통해 동해로 빠져나간 태풍 '매미'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막대한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다행히 중부지방과 충청도 지역에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하지만 올해 쌀농사, 과일 농사 등이 모두 잦은 비와 태풍으로 말이 아닌 지경이다.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 작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거센 비바람으로 아예 수확 자체를 포기해 버려야 하는 상황이다.

늘 농업정책 실패로 힘든 고향이었지만 추석 때만큼은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고향의 피폐해진 모습을 목격하고 힘없이 돌아서야만 했던 귀성객들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겠는가.

국내가 태풍 '매미'로 몸살을 앓기 시작할 때, 멕시코 칸쿤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 나라 NGO들도 대거 참여해 격렬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때 우리 나라 농촌을 태풍이 쓸고 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가장 중심에 서야 하는 사람이 행정자치부 장관이다.

그러나 총체적인 재난관리와 재해본부를 총지휘해야 할 행정자치부 장관은 국회 해임안이 통과된 상태로 거취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였다.

위기상황이나 재난이 닥칠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모금도 열심히 하고, 복구를 위한 자원봉사도 열심히 참여한다.

하지만 매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왜일까?

늘 정치권은 불안정했고 정부의 재난관리 시스템은 허술하기 그지 없었다.

여당은 신당 창당 문제로 분열된 상태고, 야당은 세대간 갈등으로 내분에 휩싸여 있다. 그런 국회의원들을 뽑아 준 국민들은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땅을 칠 지경이다. 정부 역시 신속한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인위재난(人爲災難)이란 인간의 노력으로 그 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재난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특히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재난관리 능력이다.

어차피 재난이 발생한 상태라면 신속한 현장 대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처럼 많은 재난을 겪은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제는 지금까지 겪었던 재난의 기억들을 체계화시켜 효율적인 대응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다.

국민이든 정치권이든, 이제는 누구를 탓하고 원망해선 안된다. 그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한번 민관이 모두 심기일전해 빠른 복구를 위해 힘써야 한다. 이미 민간 차원에서 남부지역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하고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동안 한창 논의되었던 정부 주도의 재해관리 시스템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적절히 대처해 하루빨리 수재민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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