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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맨 남쪽 끝, 그곳에 가이문다께산(開門山)이라는 해발 922m의 높은 산이 있다.

지금은 휴화산이지만 1000년 전만 해도 활화산으로 하늘 높이 불을 내뿜었다. 그러니까 백제, 신라시대 한반도와 일본의 왕래가 빈번할 때 이 산은 밤낮없이 불을 뿜어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등대가 되어 주었다.

이 화산의 불을 보고 백제 사람들은 노를 저었으며 이브스끼(指宿)에서 잠을 자고 다시 교도나, 나라, 오사카 지방으로 떠났던 것이다.

우연히도 이 화산의 불이 멈추고 그 등대역할이 끝나면서 일본이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오만해진 것은 아닌가?

화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일본의 화산에 대해 한두 가지만 말해 보자.

일본은 지질학적으로 화산을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없다. 연중 무휴로 지진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가고시마에서 페리호를 타고 남쪽 오끼나와 쪽으로 3~4시간 가게 되면 야쿠시마(屋久島) 섬이 나온다. 수령이 1000년이 넘는 나무가 200주 이상이나 되고 7200년 된 것까지 있어 유네스코가 생태보전지구로 지정한 곳이다.

그런데 이 섬은 80년 전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켜 마을을 용암으로 완전히 덮어 버렸으며, 옆에 있던 섬이 서로 붙어 버리는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바닷가 해변이 융기해 새로운 땅이 되었는데 80년밖에 안됐기 때문에 새로 돋아난 땅의 솔밭이 어려 기존의 울창한 숲과 확연히 구별된다.

지금도 이 산은 1년에 200회 정도 성난 사자처럼 자주 으르렁거리는 작은 폭발이 일어난다. 그래서 지질학자들은 곧 대폭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주민들 역시 젊은 사람들은 거의 도시로 떠났고, 나이 든 사람들만 섬을 지키고 있어 우리 나라 농촌을 연상시킨다. 섬의 도로 곳곳에는 관광객들이 갑작스런 용암 분출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피소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런 긴장감 자체가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경제대국도 어쩌지 못하는 지구의 용틀임과 폭발은 미래에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두렵다.? 일본 남쪽 이브스끼의 나가사끼바나 해변은 백사장이 아니라 화산으로 인한 검은 모래사장이다. 특히 이곳은 남태평양의 거북들이 알을 낳는 곳이어서 철저한 환경보호를 받고 있으며, 대신 바다의 검은 모래를 호텔 목욕탕으로 옮겨놔 찜질을 즐기게 한다. 좀 특이하다 싶으면 무엇이든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즈미라고 하는 곳은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학이 1만마리 이상 모이는데 3월에서 10월 사이 장관을 이루어 이 역시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규슈지방에 머무는 동안엔 한국인으로서 우월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 첫번째 것은 미야자끼(宮崎)에 있는 일본 최초의 천황으로 일컬어지는 진무(神武) 신궁, 그리고 그의 출생지로 전해져 오는 동굴 속의 우도신궁이다.

이곳에는 약 2600년 전 하늘로부터 인간이 내려와 일본을 다스리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때 한반도에서는 이미 선사시대가 끝나고 진한, 마한 등의 삼한통치가 시작된 때라 신궁이 삼한에서 건너간 한민족일 것이라는 게 공공연한 해석이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의 아득한 조상들은 역시 이곳 미야자끼의 휴가(日向)에서 통치자로 즉위하고 한동안 이 일대를 다스리다 나라 등 본주로 진출했다는 것이다.

사실 휴가 인근의 사이토바루 고분군은 놀랄 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밀집돼 있어 고고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곳이 왕족의 무덤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 가운데는 발굴 도중에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덮어버린 고분도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고분 속에서 일본역사의 정통성을 뒤흔들어 놓을 사실들이 나타난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그 사실이란 일본 최초의 통치자가 바로 우리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것이다.

보다 더 극적인 것은 여기서 가까운 '백제마을'을 방문했을 때이다. 마을 이름도 '백제(百濟·원래는 南鄕村)'이고 우리 나라 부여의 옛 박물관 객사를 모델로 실제 크기로 복원된 구다라노야카타(백제관)은 기와, 지붕, 기둥, 모두가 우리 나라 건물로 착각할 정도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준 전 촌장 다바루 마사또(田原正人)씨의 명함까지 한글로 되어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어쩌면 백제왕손일 것이오"라는 말에 그 역시 매우 흡족해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망하자 의자왕을 비롯 모두 당나라에 붙잡혀 갔으나 정가왕이라고 하는 왕자 등이 일본으로 탈출, 이곳에 숨어 살았다는 것이다. 신라는 후환을 두려워하여 이곳에까지 자객을 파견, 정가왕을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할 뿐 패망한 나라의 영광이나 기록은 모두 파괴되고 묻혀 버리듯이 지금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한때 일본을 지배한 것이 우리 조상이라면, 그리고 그들에게 문화를 심어준 것이 우리였다면 우리가 일본보다 모든 면에서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특히 우리는 국민의식에서 그들을 앞서야 하지 않는가? 패망한 과거의 백제 역사보다 이것이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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