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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은 아테네와 이스탄불은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쪽빛보다 더 진한 지중해 바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 고색창연한 고궁과 사원 주변의 아름다운 꽃…, 어느 것 하나 감탄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파르테논신전은 아테네 어느 곳에서도 낮은 물론, 밤에는 오렌지빛 조명으로 여신(女神)의 자태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테네에서 어떤 개인이나 관청도 건축을 할 때 파르테논 신전을 가려서는 건축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시들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대표적 상징이 될 문화재를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기원전 438년에 완성한 이 신전은 정면이 8주식의 직사각형으로 거대한 주주당(周柱堂)으로 되어 있고 본전 외벽 상부 4면에는 길이 163m 에 이르는 이오니아식 대(大)프리즈 장식이 있다. 여기에 부조되어 있는 인물은 여신을 합쳐 360여 명이나 되고 말은 219필이 살아 움직이듯 생동감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 돌기둥들이 하나로 된 통돌이 아니라 세 등분하여 세워졌다는 것이다. 지진을 대비한 공법이다. 이밖에도 돌로 쌓여진 축대며 돌기둥 위에 얹혀진 돌들…, 이 모든 것이 기막힌 기하학적 지식이 동원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세계 각국어에 쓰이는 그리스어 5만 단어 중 기하학과 물리학, 스포츠, 철학에 관한 것이 가장 많음은 이런 데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유럽문화의 원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인류에게 올림픽을 제공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입장료는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2만 원인데 1년에 그리스 인구와 맞먹는 1100만 명의 관광객이 쏟아 놓고 가는 돈이 얼마일까? 그런데도 파르테논의 보수공사는 몇 년째 유네스코에서 하고 있다.

유럽문화의 원조 그리스와 마주하고 있는 곳이 터기.

특히 이스탄불은 유럽의 문화와 아랍 문화,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함께 뿌리를 내리고 조화를 이루어 매혹적인 도시를 이루고 있다. 역사성은 더 말 할 수 없다.

서기 330년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이곳의 뛰어난 가치를 인정, 수도를 로마에서 옮겨 오기 시작하면서 도시 이름을 '콘스탄틴노폴리스'로 불려졌다. 지금도 이곳에는 로마제국이 건설했던 성곽, 도로, 수도관,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후 동로마로, 비잔틴 제국으로 이어오면서 4차에 걸친 십자군의 점령을 겪는 등 온갖 역사적 격동을 겪으면서 이스탄불은 오스만터키의 술탄 메흐멧 2세가 1453년 정복함으로써 새로운 운명을 맞이했다. 이때 겪은 53일의 전쟁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것은 술탄 메흐멧 2세가 보스포러스 해협 전투를 어떻게 이끌었는가 하는 것이다.

적이 해협에 철 그물을 쳐 함선의 진입이 불가능하자 배를 산으로 끌고가게 하여 밤중에 철 그물 방어선 너머로 바다에 진입시키는 기발한 전략을 구사한 것. 흔히, 우리 속담에 '배가 산으로 가느냐'는 말이 있는데 술탄 메흐멧 2세는 오히려 그것을 역발상으로 상대방의 허를 찌른 것이다. 이 때부터 오스만터키는 동유럽과 러시아 일부까지 지배하는 강대국이 되었는데 그 영광스럽던 때의 사원과 돔의 우아하고 장엄한 모습이 여행객의 마음을 한 없이 붙든다.

특히 같은 터키인데도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는 이스탄불의 신·구도시를 하나로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웅장한 대교들이 그림 같다. 그 아래에는 흑해와 지중해를 왕복하는 선박들이 수없이 지나간다.

한국사람만 보면 반갑게 '대~한 민국!'하며 우리의 응원가를 흉내내는 터키인들의 순박한 마음씨가 있어 이스탄불의 밤은 더욱 좋았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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