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당 문화제]동춘당 송준길 선생은 누구?

조선 후기의 대선비 송준길(宋浚吉·1606~1672년·선조 39~현종 13년)은 대표적인 기호계 사림으로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정책대안으로 이름이 높았다.

또 전국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남다른 향촌활동으로 중앙과 지방을 함께 아우르는 앞선 시대정신을 보여준 성인이기도 했다.

송준길은 쌍청당 송유의 7대 손으로 영천군수 청과공 송이창의 아들로 1606년 서울 정릉동 삼현대에서 태어났다.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본관은 은진(恩津).

송준길은 아버지의 벼슬을 따라 지방을 오가며 살다가 네 살 때 선조의 고향 송촌(宋村·송씨네 동네라는 뜻)에 처음 오게 된다. 그후 여덟 살 때 벼슬에서 물러나 귀향하는 아버지를 따라 다시 송촌으로 온 뒤 인생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지냈다.

어려서 율곡 이이(李珥)를 사숙했으며, 회덕향교를 거쳐 청년기에는 김장생의 문하에서 우암 송시열, 초려 이유태 등과 함께 수학했다. 인조반정 직후인 1624년 사마양시에 합격했고, 1630년에 세마(洗馬)에 임명됐지만 사퇴하고 학업에 전념한다. 44세에는 효종이 즉위하자 빈청관리들의 천거로 같은해 6월 부사직·시강원 진선, 8월에는 사헌부 장령을 제수받았다.

송준길은 향리인 회덕 송촌에서 후학양성을 위해 노력하다가 1672년 타계 후 현종에 의해 영의정에 추증(追贈)됐다.

이후 돈암서원과 충현서원, 승현서원 등 여러 서원에서 배향됐으며 1756년(영조 32)에는 문묘에 배향돼 민족의 대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송준길은 조선 예학의 대가로 기호학파 유학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나, 영남학파를 수용해 예학을 집대성했다. 석봉체를 기반으로 획의 굵기를 더한 동춘당 서체는 양송체로 불리며 청경하고 단아한 서풍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동춘당(송촌동 192번지)은 1643년 송준길 선생이 38세 때 지은 별당 목조건물로 보물 제209호로 지정돼 있다. 건물 앞에 걸려 있는 '同春堂'이라는 현판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6년 뒤 우암 송시열이 직접 써서 걸어둔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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