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국의 초대 총리 비스마르크가 1815년 오늘 출생했다. 프로이센에서 융커(지방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괴팅겐과 베를린 두 대학에서 공부한 후 프로이센의 관리가 됐다.

베를린의 3월혁명 때는 반혁명파로 활약했고 보수당 창립멤버의 한 사람이었다. 혁명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연방의회에 프로이센 대표로 임명돼 프랑크푸르트에 부임했다. 그는 독일의 통일방식에 대해 오스트리아와의 협조를 주장했지만 결국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갖게 돼 오스트리아와 자주 대립했다. 1848년 전후에 보수적인 정치가에 불과했던 그는 러시아 주재대사, 프랑스 주재대사가 되면서 안목이 넓어졌고 1862년 국왕 빌헬름 1세가 군비확장 문제로 의회와 충돌했을 때 프로이센 총리로 임명됐다. 취임 첫 연설에서 이른바 ‘철혈정책(鐵血政策)’ 즉 “현재의 큰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과 피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해 의회와 대립하며 군비확장을 강행했다.

1871년 독일제국 총리가 되어 1890년까지 이 지위를 독점했고 그의 집권 아래 독일 공업은 유럽에서 가장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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