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정신 제자들에 '대물림'

늙으신 부친의 곁에서 병수발을 한 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교사란 천직을 봉직하며 벽지 학교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계신곳이라면 100리 길을 멀다 않고 달려갔다.

그런 부친이 지난 1993년 소천(召天)하던 날, 당신을 마음속에 묻고 가슴에 숨겼던 눈물을 그제서야 쏟아냈다.

장대초 주명순(52) 교사는 함께 사는 평범함을 묵묵히 지키며 학생들에게 효(孝) 정신을 대물림하고 있다. 주 교사가 말하는 효(孝)는 남을 배려하고, 자신에게 풍족한 것을 나눠주는 더불어 사는 마음이다.

주위에서 효자 집안에 효자·효부 나온다고 칭송이 자자하지만 정작 주 교사에게 효행은 백행(百行)의 근본일 뿐이다. 효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법을 알고 있는 그에게 믿음이자 삶의 원칙이다.

"아버님께서는 30여년간 병든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셨습니다. 그런 아버님이 간암 등 합병증으로 6개월밖에 사실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저에게 부모님 봉양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죠. 특별한 것이 아닌 당연한 일, 효는 그런 마음가짐에서 비로소 출발한다고 봅니다."

부친과 주 교사까지, 30여년간 '대물림 병수발'을 든 주 교사에게 효 교육은 당연히 내실있을 수밖에 없다.

한겨울에는 손이 시린 학생들을 위해 장갑을 짜 주고,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도시락 반을 아이에게 내놓았다.

매주 토요일 실시하는 가정의 날과 매달 마지막 토요일 실시하는 효경의 날은 주 교사가 부임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마련된다. 효는 윗 사람뿐만 아니라 동료와 학생들, 모두에게 향하는 마음가짐이자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주 교사가 교직생활을 시작한 것은 지난 71년. 공주교대 졸업 성적이 좋아 가고 싶은 학교 선택권이 주어진 주 교사였지만 노약한 부친이 계신 부여에 내신을 냈다.

첫 부임지는 부여에 있는 규암초등학교. 부여에서는 비교적 큰 학교에 발령받은 주 교사는 이 곳에서 교직과 부모 봉양을 같이하는 수행에 들어갔다.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부친을 수발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하나 하기도 벅찼지만 주 교사에게는 행복한 업(業)이었다.

"초임교사 시절 당시 어렵게 사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했고, 생활고에 찌들어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학생들도 부지기수였죠. 교사에게 돌볼 수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은 고행이라기보다 천직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죠."

사제동행 식사도 그녀가 올곧게 지키고 있는 생활 습관이다. 길어야 20분인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어린 학생들에게 더불어 사는 마음을 몸에 배게 하는 첩경이었다.

효를 바탕으로 한 생활지도는 이후 부임한 부여 합송초(72년), 홍성 홍동초(74년), 홍성초(76년), 홍성 구항초(81년), 홍성 홍남초(84년), 홍성 홍동초(89년)를 거치며 완숙미를 더했고, 부여와 홍성을 오가는 부친 병수발도 계속됐다.

그런 그녀에게 1993년, 부친의 소천이 다가왔다. 발병 당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녀의 정성스런 병 간호와 기도에 힙입어 25년 넘게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부친이었다.

"못다한 효가 아쉬웠습니다. 병에 지치다 돌아가신 것에 가슴이 너무 아팠죠. 아픈 아버지였지만 소중했고, 제 곁에 있어준 아버님께 감사드린 후 손을 놓아 드렸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주 교사는 그제서야 하고 싶던 일들을 시작했다. 못내 아쉬운 욕심들이었다. 교대 졸업 시절, 마다했던 대전지역 근무 기회도 이어졌다.

부친이 돌아기신 이듬해인 1994년 대전 대동초등학교에 부임했다. 주 교사의 슬픔은 학생들에 대한 정성으로 쏟아졌다. 인성지도를 비롯, 독서지도, 민속놀이 경연대회 지도교사, 영어 지도교사 등 다방면에 걸쳐 정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동초에서만도 제 5, 6회 민속놀이 경연대회 우수 지도교사상을 비롯해 제 2, 3회 영어 이야기대회 지도교사 표창이 이어졌다.

대전 중원초에서는 창작동요부르기 지도교사를 맡으며, 작곡과 작사 부문 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학생들과의 끈끈한 교감도 이어졌다. 중원초에서 담임을 맡고 있던 반 학생 2명이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난치병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죠. 안타까운 마음에 새벽 기도회를 자청했고,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회복 가능성이 없던 학생들이 건강해졌죠."

주 교사는 지난해 개교한 장대초등학교에 부임했다. 교직에 몸담은 지 30년이 된 해였고, 열심히 하자는 마음도 아로새겼다. 장대초의 교가 작곡은 그런 마음에서 일군 결실.

"교장선생님이 한번 교가를 같이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고심 끝에 작곡을 담당하기로 했죠. 수개월간의 노력 끝에 결실이 맺어졌고, 지금의 교가가 됐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나이 50을 넘었다. 초임교사 시절의 설렘은 사라졌지만 학생들을 위한 마음은 세월의 무게만큼 단단해졌다. 학생들 곁에서 천직을 수행하고 싶다는 주 교사, 그녀의 사랑이 교단의 든든한 밑거름으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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