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영 언론인

군사적 접근법과 평화적 해결 사이를 오가는 미국의 극단적 북핵 해법의 추가 이번에는 대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를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부른 것만 해도 작지 않은 변화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설명하며 김 위원장을 옹호하자 취재기자들 앞에서 '이 사람 (this man)'이라고 호칭하여 한미간에 외교적 파장을 불러온 직선적 성격의 지도자 아닌가.

외교적 타결에 무게를 두어온 국무부는 최근까지 남북한과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의 다자간 협상방식을 추진해 왔다. 그러다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6자회담으로 선회했으며, 북한도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는 게 백악관과 국무부의 '공식' 발표다.?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김정일 체제에 대한 확고한 보장과 경제적 이득을 챙기려는 북한은 지금까지 양자 회담을 고집해 왔다. 북한은 이 형태로 이미 성공을 거둔 적도 있다. 지난 1994년 제네바 협상 때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부시 대통령이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그는 '인민을 굶기는 지도자'는 인정할 수 없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졸역, '부시는 전쟁중' 참조)

6자회담은 형식상 한국측과 이해를 같이하는-실제로는 이해를 같이한다고 생각되는- 미국, 일본이 한쪽 테이블에 앉고, 반대 쪽에 북한과 아직도 이념적 궤를 함께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3대 3으로 맞붙어 북핵문제를 다루는 가장 그럴싸한 방식이다. 북한의 핵무장 노력이 궁극적으로는 김정일 체제를 보장받고,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거액의 달러를 얻는 데 있다면 관련 당사국 다섯 나라가 공동으로 이에 합의하는 방식은 전혀 밑질 것이 없는 장사다.??

북의 핵무장은 국방비도 제대로 조달할 수 없는 심각한 경제난과 아사자가 속출하는 극심한 식량난에 봉착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사실 한번쯤 빠져들 만한 유혹이다. 게다가 사담 후세인이 핵이 없어 무참히 당했다고 여기는 북한으로서는 마지막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시 코드를 완전히 거꾸로 읽어 이라크 교훈을 반대로 해석한 자충수임에 틀림없다. 북의 핵 놀음은 '악의 축' 김정일 제거를 목표로 하는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 폭격의 분명한 명분을 주는 자해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침공으로 기록된 이라크 '선제공격'이 세계에 준 메시지다.

문제는 6자회담 성사 과정에 직접적인 당사국인 우리가 별다른 역할과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거간꾼 노릇은 중국 외교부차관 다이빙구어가 다 했다.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전화를 해 중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한 결과다. 러시아를 끼워 준 것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부시 대통령의 미움을 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후 복구에 군대를 파병하겠다고 제안을 한 다음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은 기껏해야 6분의 1 지분에 만족하며 돈지갑은 통째로 내놔야 할 처지다.?

북한이 핵무장에 적극 반대하며 핵 확산을 방지하려는 5개국의 압력과 설득을 받아들일 것인지가 6자회담 성패의 관건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인접지역이 핵무장을 한다는 데 대해 알게 모르게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체면치레를 해 가며 실리를 얻을 만큼 한가하지 않은 것이 국내외적인 현실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야말로 욕심부리지 말고 핵 포기의 대가를 챙기는 것이 그도 살고 한반도도 전쟁을 피하는 유일한 대안임을 직시해야 한다. 6자회담은 미국이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마지막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 '일방주의'라고 매도당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온 부시 대통령이 국무부의 대화노선을 택함으로써 북핵을 해결하는 데 있어 일방적 전쟁주의자가 아님을 과시하는 국제적 제스처가 6자회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패로 끝난다면 파월 등 대화주의자들은 설 곳이 없을 것이다. 정밀 폭격 시나리오는 지금도 내밀하게 추진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북한의 핵무장은 김정일 손에 있고, 한반도 상황은 부시에게 달린 것이 21세기 초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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