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수 경제부 차장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啓蟄·3월 5일)이 지나자마자 국민 대다수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야구대표팀의 도쿄라운드 진검승부를 보면서 열광했다.

한국야구대표팀은 지난 7일 일본에 2대 14라는 치욕적인 콜드게임 패배를 당한 지 불과 이틀만인 9일 1대 0으로 승리하며 콜드게임 수모를 되갚았다. 이날 저녁 TV 앞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을 응원한 국민들은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진검승부를 보면서 한국이 신승을 거두자 환호했다.

물가에, 유가에, 주가에, 환율에 무엇하나 신바람 나지 않는 현실에 야구대표팀이 전해준 짜릿한 승전보는 잠시 동안이라도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무엇이 우리 국민을 이토록 열광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신바람 나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는 정서로 압축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신바람이 나고 흥이 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

실업률 증가와 치솟는 물가로 서민들은 날이 갈수록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칼날은 직장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살얼음판을 걷듯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급기야 근로능력이 없는 110만 명에게 6개월간 월 12만 원 또는 35만 원씩을 나눠주고, 최저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86만 명에게 일을 시키고 현금과 소비쿠폰으로 83만 원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6개월간의 한시적 지원이 끝나는 하반기에 경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또 다른 지원책을 나와야 하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한시적 직접 지원은 당장 먹고사는 불편은 일부 해소해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제 위기 하에서 공직자(公職者)와 위정자(爲政者)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에게 가야 할 돈을 제 돈처럼 쓴 공무원들의 파렴치한 행각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다 안마시술소로부터 뒷돈을 받은 경찰까지 발각됐다.

이들은 더 이상이 공직자가 아니라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위정자들 또한 척제현람(滌除玄覽)의 자세보다는 진검승부에 매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척제현람’이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위정자가 손수 백성들의 섬돌을 닦아주고 어두운 곳을 살펴본다’는 뜻이다. 경제회생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국회가 여야의 밀고 당기는 싸움질 속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속에서 울화통이 터진다.

국민 대다수는 국회의원들이 고액의 봉급을 받아가면서 스트레스만 잔뜩 주는데 진저리를 치고 있다.

일부는 국회 무용론까지 서슴없이 제기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자신들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국가위기를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

진검승부에서 한걸음 물러나와 삶이 푸석해지는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라고 강력히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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