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원 을지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신선한 바람, 기분 좋은 햇살과 더불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찔 만큼 모든 것이 풍요롭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그 좋은 계절 가을에는 독서말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니 오히려 책만 읽고 앉아 있기에는 밖으로부터의 유혹이 너무나도 강한 계절이다. 진정으로 책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절을 가릴 것도 없지만, 굳이 독서하기 좋은 시기를 꼽자면 단연 여름이 으뜸이다.

요즘 같은 찜통더위에는 물놀이, 팥빙수도 시원하지만 우리의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소시켜 주기에는 책만큼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름 휴가는 그동안 책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서점에서 독서를 하며 실속도 챙기는 현명한 젊은이들이 좀 더 늘어나길 바란다. 최근에 생긴 몇몇 대형 할인점들의 서적 코너가 예외 없이 꼬마 손님들로 붐비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책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독서에는 참으로 인색하다. 아이가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을 보고 있으면 공부는 안 하고 딴청을 부린다며 오히려 꾸중하는 부모도 종종 있다. 우리의 독서율이 일본이나 서구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그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독서 습관을 갖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은 어린이는 자라서도 독서를 즐긴다. 또한 많은 명작을 섭렵한 사람은 폭넓고 깊게 생각하며 상상력 또한 풍부해진다. 많이 생각하고 꿈꾸기를 즐기는 사람이 창의력도 뛰어나며 모든 일에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이들은 소음으로 뒤덮인 길거리에서 학교와 학원, 독서실로 밤늦도록 숨 가쁘게 다니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의 신비를 느끼는 대신, 습관처럼 켜는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 앉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개성, 취미와는 상관없이 과중한 학습에 짓눌려, 부모와 대화를 나누거나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서 꿈과 정서를 키워 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몇 해 전부터는 독서가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독서과외까지 생겼다. 책을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기꺼운 마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공부'의 연장 선상에서 주제와 저자, 논리구조를 먼저 읽어야 한다. 이 때문에 학원에서, 또 집에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과 똑같은 의미로 책 읽기를 날마다 강요해? 독서마저도 지겨운 하나의 학과목으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또한 지나치게 독서의 목표량을 정해 의무적으로 독후감 쓰기를 강요한다면 아이는 책을 지겹게 여기며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런 책 읽기 속에서 진실과 감동을 느끼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한번 보여 주는 것에 비길 수 없다. 평소에 책 읽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큰 재산이 될 것이다. 아이가 미래의 큰 재목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부모 스스로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모습을 보여 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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