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철호 편집부 차장

'스펙(specification)'.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 많이 쓰이면서 언론매체에도 곧잘 등장하는 말이다. 원래는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의 제원 등 어떤 기기의 성능, 기능을 보여주는 설명서에 쓰이는 단어다. 요즘엔 출신학교와 성적, 영어능력점수 등 특히 구직에 필요한 요소의 높고 낮음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스펙이 좋고 나쁨에 따라 취직이 유리하고 불리하기 때문에 '좋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구직자는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고용자는 우수인재를 원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펙을 따지는 게 점점 지나쳐서 사람을 수치로 평가하고 그 수치대로 줄 세우는 경향이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음이 씁쓸하다.

'스펙 높이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태어나 말도 제대로 못하는 시기부터 강요받는다. 파장을 일으켰던 교육부의 학업성취도 평가 역시 스펙을 가늠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성적 수치에 따라 아이들을 줄 세우고 아이들의 미래를 줄 세우고… .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지 못하고 실내에 갇혀 성적과의 씨름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 열성부모들은 스펙을 높이기 위해 억지로 아이가 공부하도록 밀어붙인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원 뺑뺑이를 돌게 하고 한창 푹 자야 할 아이들에게 '잠 고문'을 하며 억지학습을 강요한다. '아이들이 지금 당장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성적만 올라가면 훗날 저절로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생각. 과연 그럴까.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는 이 같은 상식을 뒤집는다. 성공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우리 머리에는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뇌가 있는데 감정의 뇌가 행복감을 자주 느끼면 생각의 뇌가 더욱 활성화되고 잘 발달한다.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뇌 연구 국내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서유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 뇌의 회로는 엉성하고 가늘어서 학습을 강요하거나 어려운 내용을 무조건 입력하면 과부하가 일어난다. 마치 가느다란 전선에 과도한 전류를 흘려보내면 과부하 때문에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학습을 강요하면 아이는 학습에 흥미를 잃게 되고 그 이후엔 여간해선 학습에 대한 흥미를 회복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심화학습이 아닌 선행학습은 소모적 경쟁일 뿐이다.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편하게 해주란 얘기일까. 교육전문가들은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것을 장애물 없이 안락하게 키우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방임'이 아닌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행복의 요소라는 것이다. 자기결정성 이론의 창시자인 미국 로체스터대 에드워드 디치 교수는 "자율성은 아이 스스로가 과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해주는 게 자율성은 아니다"고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선택한 과제를 어려움을 견뎌내며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찾는다. 과제를 해결하는 즐거움을 맛본 아이들의 행복감은 더욱 커진다. 행복감이 커지면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학습의 행복감을 맛본 아이들은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더 큰 행복을 찾아 나선다. 행복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성적은 행복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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