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協 이사장

청포도가 익어 간다는 7월, 그러나 올 7월은 잔인한 달인 것 같다. 유난히 가슴 아픈 죽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건비라도 보태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공사장에서 일하다 유독가스에 질식해 죽은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아동학대로 위탁모에게 맡겨졌던 아이가 '다시 아버지에게 돌려보낸다'고 혼나는 바람에 놀라 가출했다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초등학교 5학년생. 생활고에 아이 셋을 데리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30대 어머니….

부모님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안타깝게 사고를 당한 고등학생의 경우는 한편으로 메마른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기적이고 인터넷 게임만 좋아할 시기에 부모님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스스로 공사장에 따라나설 줄 아는 대견스러운 아들이 아니었던가. 그런가 하면 이 세상을 혼자 힘으로 버텨내기에는 아직 어린 초등학교 5학년생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가정과 사회 모두 얼마나 무책임한 환경에 있는지를 반성하게 한다.

그 아이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말보다 자신을 낳고 길러 준 '아버지의 폭력'이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급기야 엄마가 자식 셋을 데리고 투신자살한 사건을 대한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 개인적으로는 너무 멍한 기분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해답 없는 생각의 편린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온통 뒤죽박죽 얽혀 버리고 만다.

그러다가도 아무리 부모라지만 자식의 생명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반문이 또 든다.

밝고 명랑한 성격이었던 8살 큰아이는 죽음을 직감하고 그렇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는데…. 자식을 둔 부모로서 그 어떤 사건보다도 아프게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다.?

카드빚, 카드빚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유흥비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들 건사하는데 쓴 것이었다.

남편이 실직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자 노력했지만 수년 동안 지속되어 온 생활고는 그녀의 숨통을 조여 왔을 것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아이들 문제다.

예전처럼 자식은 낳아만 놓으면 '크는 것은 자기 몫'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과 노력이 아이들의 성장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다.

학교를 가도, 학원을 가도 그 어느 곳도 극심한 경쟁사회이다.

아이들의 경쟁에 부모의 몫도 많은 부분 영향을 주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 비정한 엄마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없었다.

심지어 투신자살한 당일 1학년짜리 큰딸이 학교에서 가는 수영장 현장학습비 3800원조차 줄 수가 없었다.?

그조차도 해 줄 수 없었던 엄마의 상처받은 자존심, 무기력함….

이 비정한 엄마가 바라본 세상은 어쩌면 그들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높고 두꺼운 벽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아무리 알뜰하게 살림을 살아도 넘지 못할 높은 감옥 같은 막막한 사회의 벽!

그 답답한 벽 속에서 아이들만 놓고 떠날 수 없었던 엄마의 절박함, 그 절박함은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를 내던질 정도였다.

한 계단, 한 계단,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생각하며 오른 그 14층 아파트 계단은 알 것이다. 이 비정한 엄마가 짖눌리고 있던 세상의 무게, 그 무게는 살려 달라는 아이의 울부짖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세상의 무게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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