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초(楚)의 항우가 한(漢)의 유방(劉邦)에게 사면초가의 수세에 몰려 20여 기의 기마병만 이끌고 장강 기슭에 도착해 동쪽으로 오강(烏江)을 건너려고 할 때였다. 정장(亭長)이 배를 강 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우에게 말했다. "강동(江東)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 1000리이며, 백성이 수십만 명에 이르니 그 곳 또한 족히 왕업을 이룰 만한 곳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저에게만 배가 있으니 한나라 군사가 이 곳으로 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는 못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항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 데 이 강을 건너서 무엇을 하겠는가? 또한 내가 강동을 떠나 서쪽으로 갈 때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함께하였는 데, 강동의 부모형제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삼아 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面目)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설사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항우는 이 말을 한 후 부하들에게 모두 말에서 내려 걷도록 하고 짧은 무기만을 들고 싸움을 하게 했다.

이 때, 한나라 군사 중에 옛날 그의 수하였던 여마동(呂馬東)이 있음을 보고는 "내가 들으니 한나라 왕이 나의 머리를 천금과 만호의 값으로 사려 한다고 한다. 내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리라" 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여기서 ‘면목’이라는 말이 나온다. 항우는 천하를 얻겠다며 강동의 젊은이 8000명을 이끌고 나갔지만 모두 죽게 한 자신을 그들의 부모형제들이 용서한다고 해도 그들을 쳐다볼 낯이 없다는 뜻에서 면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스스로 자기 잘못을 뉘우쳐 사람다움을 지켜 나가겠다는 뜻이리라.

요즘 대전시의회를 보고 있으면 ‘면목’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후반기 선거로 인한 계파 간의 갈등과 그 과정에서 빚어진 한 의원의 부정선거 의혹. 결국 부정선거 의혹은 벌금 500만 원이라는 법원의 선고로 확인됐다.

시민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한 것은 시의회의 태도다.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법원의 판결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의회는 이와 관련해 시민들에게 단 한 마디의 사과조차 없다.

오히려 ‘개인적인 일’이라고 애써 축소·희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모 의원은 “법원 판결문에 부정행위는 있었지만, 선거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여기에 김 의원의 사태를 빌미로 의회 주도권을 둘러싼 의원 간의 헐뜯기와 흔들기를 하려는 몰염치한 태도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안 보려고 하고 보이지도 않는 듯하다. “죄송하고 정신 차리고 잘 하겠다”는 말 한 마디를 원하는 시민들의 자성 요구가 의원 나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가보다.

항우의 말처럼 시의원들의 입에서 “설사 대전시민들이 불쌍히 여겨 앞으로라도 의회를 잘 끌고 나가라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面目)으로 시민들을 대하겠는가.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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