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강춘규 차장

'해머로 부수고 빠루(쇠지렛대) 소리가 요란하다. 괴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난무한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공사장이 아니다. 집회현장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이다. 지난해 연말 대결로 끝난 국회는 새해에도 대결로 문을 열었다. 여야는 쟁점법안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극한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을 등에 업고 언론관계법 등 쟁점법안들의 강행처리에 들어갔다. 이에 민주당은 본회의장 점거로 맞섰다. 수 차례 무력충돌이 반복됐다. 갈등의 골만 깊어진 상황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은 강제해산을 지시했다. 국회경위들이 민주당 의원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멱살을 잡고 잡히며 부상자도 속출했다. 민주당은 '의회 쿠데타', '날치기 시나리오'라며 본회의장 사수작전에 들어갔다. 반면 한나라당은 질서유지권에 대한 방해는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해치는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법안 처리가 시급한 만큼 본회의장이 비면 당장이라도 들어갈 태세다.

국회파행의 끝이 안 보인다. 서로를 '자해정치' '독재정치'라고 헐뜯는다.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모르겠다. 국민들이 일 잘 하라고 뽑아준 '선량(選良)'의 모습은 도저히 찾아 볼 수가 없다. 저마다 민생을 앞세운다. 그러나 당리당략만을 포장할 뿐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다.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대한민국은 IMF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생계 걱정을 하는 가장들의 탄식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세계 각국은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약발은 미미하다. 똘똘 뭉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제 쓸데없는 소모전은 그만둬야 한다.

광일미구(曠日彌久)라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쓸데없는 소모전에 세월만 보낸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말엽 조나라 혜문왕은 연나라의 침공을 물리치기 위해 제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3개 읍성을 준다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의 파견을 요청한다. 그래서 전단은 조나라의 총사령관이 됐다.

전단은 일찍이 연나라의 침략군을 크게 격파한 바 있다. 그러자 조나라의 명장 조사는 재상 평원군에게 "조나라에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전단은 타국인 조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항의하며 본인에게 맡겨줄 것을 청한다.평원군은 조사의 의견을 묵살한 채 전단에게 조나라 군사를 맡겨 연나라 침공군을 대적케 한다. 결과는 조사가 예언한 대로 두 나라는 아무런 득도 없이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강대한 조나라가 제나라의 패업에 방해가 된다고 본 전단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두 나라가 병력을 소모해 피폐해 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작금의 국회가 그 꼴이다. 대화와 타협은 실종된 지 오래다. 국민들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준 민의는 외면한 채 당리당략만을 위해 싸우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선량(選良)'의 모습은 간데없고 '불량(不良)'한 행동만 판친다.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하루 빨리 국회를 정상화 시켜야 한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본분을 지킬 때 존경의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선량(選良)'과 '불량(不良)'은 종이 한 장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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