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0월 6일, 장융후이(江擁輝)가 지휘하는 중국 인민지원군은 제38군단의 6개 연대에 지원부대병력을 합하여 총병력 4만 4056명을 이끌고 철원 서북방 395고지를 공격했다.

이에 국군은 김종오 소장이 지휘하는 제9사단 예하의 제28·29·30연대 병력 2만 명에 국군 제51·52·53포병 대대, 국군 제53전차중대, 미군 제214자주포병대대, 미군 제955중포병대대, 미군 제73전차대대 등의 지원을 받아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9일 동안 12번의 공방전 끝에 중국군은 1만여 명, 국군은 약 3500명의 사상자를 냈고 10월 15일 오전에 가까스로 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백마고지는 광활한 철원평야 일대와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 보급로로 군사지정학상 요충지다.

이 때문에 국군과 중공군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심한 포격으로 고지의 모습이 백마(白馬)같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다.

이 전투가 국군의 승리로 끝난 요인은 우수한 정보활동과 보병과 포병 사이의 적절한 협동, 공군의 항공근접지원, 전투부대의 적절한 임무교대 등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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