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대 한국무역협회 충북지부장

"불난 집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경 집주인이 아니다. 집주인이라면 물을 뒤집어쓰고라도 불 속에 뛰어들어 가재도구 하나라도 건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 환율 파생상품인 '키코'(KIKO) 피해업체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자니,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난다. 한 식구같은 수출업체들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데도 도울 길이 별로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 한 건실한 중견기업이 키코 피해로 흑자도산을 했다. 이에 각종 언론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함께 키코 피해의 심각성을 보도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러나 미 금융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키코 문제는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부도 환율이 여타 선진국 통화와 달리 폭등하는 추세를 보이자 안도하는 모습을 보일 뿐 키코 피해는 외면하고 있다. 단지 키코 가입기업들만이 불속을 뛰어 다니는 형국이다.

정부는 환율이 오르는 것만 반길 뿐 키코 피해에 대해서는 뒷짐을 지고 있다. '피해는 알고 있지만 이는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정부책임은 없을 뿐더러 개입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사회일각에서 키코 가입기업을 환투기업체로 매도하면서 해당기업 임직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현 사태에 정부는 책임이 없는 것인지, 그리고 이들 키코 가입기업 모두가 환투기업체인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는 수출기업들의 키코 상품가입을 유도한 책임이 있다. 원화 환율은 지난 수년간 계속 하락해왔고 대부분의 국내외 전문기관은 금년에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또한 이러한 전망들에 대해 적극 동조하였고 환 헷지를 직간접적으로 권장했다. 때마침 외국계 은행을 중심으로 환 상품이라며 키코 상품을 소개하자 환율하락이 두려운 수출기업들은 너도나도 앞 다투어 키코 상품에 가입했던 것이다.

둘째, 정부는 불공정한 상품의 유통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 키코 상품은 외형은 환 헷지 상품이지만 내용은 환투기상품이다. 계약환율의 범위 내에서는 헷지기능을 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환투기상품으로 변하는, 외형과 내용이 다른 불량상품이다. 즉, 키코 상품은 지금과 같이 환율이 급등하여 계약환율의 범위를 벗어나면 은행에 계약금액의 몇 배를 지불해야 하지만 환율이 계약환율의 범위 아래로 떨어지면 계약이 무효화되는 점에서 기업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품이다.

그렇다면 키코 가입업체는 환투기업체인가. 아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수출기업이 환 헷지상품 가입은 당연하고도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정부를 포함해 사회 분위기가 키코 상품 가입을 조장하는 분위기였다. 또한 키코 상품은 계약환율의 일정범위를 벗어나 환투기상품으로 변하면 은행만 이익을 볼 뿐 기업은 전혀 실익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이 환투기를 목적으로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환율이 계약범위 이하로 떨어지면 기업이 이익을 보아야 투기가 될텐데 그럴 경우 계약은 자동 해지될 뿐이다. 따라서 환투기는 은행이 한 것이지 수출업체가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출기업은 은행의 환투기의 희생물이었을 뿐이다.

환율이 달러 당 1200원을 넘어섰다. 더 이상의 피해를 감내할 기업은 없으므로 더 늦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외화대출이나 창구지도 만으로는 키코 가입기업의 연쇄 흑자도산을 막을 수 없다. 시장 불개입을 원칙으로 삼는 미국정부가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을 보라. 정부는 키코 피해를 인수하든지 아니면 모든 비용을 대서라도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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