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영 있던 보령 오천면서 … 300여명 참석 큰 관심

1896년 폐영된 충청수영이 113년 만에 본래의 이름을 되찾고 조선시대 수군영의 재판을 재현한다.

만세보령추진위원회(위원장 신준희 시장))는 조선시대 3도 수군의 한 본영이었던 '충청수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본영이 위치했던 오천면 소성리에서 시민, 학생 등 3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30일, 충청수영 재판재현 행사를 가졌다.

진휼청 앞마당에서 재현된 재판은 조선시대 수산물 판매권을 독점한 죄인 2명에 대한 판결(곤장 30대)과 대명률을 어긴 종교인 4명에 대한 처형을 언도하는 내용으로 주산산업고 학생 등 70여 명이 참가해 진행됐다.

충청수영은 천수만 연안에 위치한 조선시대 군사상 요충지로 정3품의 수군절도사가 있었던 3도 수군의 한 본영으로 충청도 서해안 방어의 최고 사령부였다.

조선 세조 13년인 1467년에 설치되고 1896년 폐영될 때까지 430년간 330여 명의 절도사가 재임하면서 평택에서 군산에 이르는 서해 요충지를 지키는 최강의 수군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최전성기에는 군함 90여 척과 수군 5300여 명이 주둔했을 만큼 위세를 떨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수영성은 1973년 '보령 오천성'이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됐으며 올해 지난 1일, '충청수영성'으로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충청수영성이 위치한 오천항은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어 백제 때부터 '회이포'라는 이름을 가진 항구로 중국, 일본과 교역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와의 교역 창구로 명성이 높았다.

?보령=김성윤 기자 ksy4111@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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