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구 대한건설협회 대전광역시회장

지난주 추석 연휴 뒤에 날아온 미국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메릴린치의 매각 소식에 전 세계 금융시장은 엄청난 패닉상태에 빠졌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의 몰락으로 미국 다우지수는 9·11 사태이후 가장 큰 낙폭으로 폭락하며 '검은 월요일'을 연출했다. 국내 코스피 지수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90포인트 이상 폭락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사인 미국의 AIG도 유동성 위기로 파산 위기에 처했으나 FRB로부터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 받아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리먼발 금융위기는 금융선진국으로 불리던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일순간에 전멸시켰다.

미국 정부는 정리신탁공사(RTC)를 통해 부실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한화로 784조 원에 달하는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을 발표하며 서둘러 금융위기 진화에 나섰지만 전세계 주식시장은 월가의 위기설과 미국 금융당국의 구제대책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혼란에 빠져있다.

이번 금융위기는 따지고 보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불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부동산 거품붕괴와 침체, 이로 인한 부동산 매매 위축과 가격하락, 상환능력 상실과 부실채권 확산으로 이어지는 서브프라임 부실이 이번 미국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한국도 주택 미분양 적체로 인한 금융부실 문제를 단순히 건설업계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금융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로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대출 500조 원 중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232조 원(46%)에 이른다. 주택경기가 현재와 같이 경직되고 주택가격이 지속 하락한다면 주택담보대출 중 일부가 상환능력을 상실하여 금융기관의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

전국적인 미분양 물량은 공식적으로 14만 채, 비공식적으로는 25만 채라고 한다. IMF 당시 주택 미분양 물량이 10만 채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미분양 물량이다. 이러한 주택 미분양은 지방으로 가면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로 인한 건설업계의 상황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금융권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의 총규모는 65조 원으로 현재와 같은 주택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건설업체는 자금경색으로 인한 PF대출의 부실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

또 저축은행의 경우 6월 말 현재 PF대출 연체율이 14%까지 치솟는 상황이다. 지방의 중소 건설사들이 미분양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 한국발 부동산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PF와 함께 부각되고 있는 것이 ABCP(유동화기업어음)이다. 이미 분양이 완료된 사업지로 들어올 중도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신규 분양 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각각의 사업지가 꼬리를 무는 형태로 연계되어 있어 미분양 증가로 ABCP발행이 어려워지면 금융기관은 대출금 상환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 금융기관이 건설업계에 투자했던 PF나 ABCP의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거나 조기 상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 자금 유동성에 메마른 건설업계에 적지 않은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부동산 시장과 건설업계의 위기는 주택 미분양이 가장 큰 위험요소이다. 그러나 정부에선 9·19 주거안정대책이나 이미 나온 8·21 대책을 통해 공급을 늘려 시장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전국적인 잠재 미분양 물량이 25만 채를 이르는데 여기에 수도권의 공급자 위주의 정책들만 나오니 지방의 미분양 물량은 더욱더 적체가 심각해 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보다는 현재 경직되어 있는 주택 매매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찾고 매매 활성화에 필요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운용은 은행 자체 내에서 주택담보대출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주택 수요자를 위해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서울과 수도권에만 초점을 맞추어 규제완화 혜택이 집중되는 등 지방 미분양 해결을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해 내놓은 '6·11 대책'이 전혀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못한 측면을 볼 때 지방 미분양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로 단순히 해결될 수 없다.

건설산업은 GDP에서 15%가량, 서민경제의 18% 이상을 차지할 만큼 고용효과와 내수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현재와 같은 지방 미분양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내 경제의 큰 축인 건설산업이 위기에 직면할 수 있고 국내 내수경제와 실물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주택 미분양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잘못하면 미국과 같은, 그러나 다른 형태의 한국형 금융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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