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한 목원대 총장

이번 추석 때 오랜만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좀 쉬고 싶어서였다.

남해안 바닷가에 가서 며칠 동안 모든 일을 잊어버리려 노력하며 모래사장을, 때로는 바닷가 나무 숲속을 거닐기도 하였었다.

아마도 추석날 오후 시간이었을 게다.

혼자 바닷가 옆 숲속 길을 걷고 있는데 시골사람 몇이서 길가 옆 숲속을 향해 큰 절을 하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음식을 조금 차려놓고 온 식구들이 숲속을 향해서 무엇인가 아련한, 그러면서도 슬픈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 근처에서 서성대던 나는 음식물을 다시 보자기에 싼 후 그 곳을 떠나려는 그 분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해보았다.

"혹시 부모님을 이 숲 속에다가 모셨나요?"

그랬더니 젊은 아낙네가 작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화장하여 이 숲속에 뿌렸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는 바닷가 숲 속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멍하니 먼 바다를 쳐다보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나는 미국의 영화배우 가운데 윌리암 홀덴이라는 신사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그가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그의 지적이고 신사다운 매너에 늘 매료되곤 했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윌리암 홀덴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 주위 사람들이 문을 뜯고 들어가 보니 혼자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책상 모서리에 머리가 찔려 과다 출혈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섭섭한 생각에 내 헌 차에 오랜만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윌리암 홀덴의 뼈가루가 뿌려졌다는 팜스프링 사막을 찾아갔었다.

사막에는 아무도 없었고 황량한 바람만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래도 그 때는 30년 전 내가 청춘의 시간을 한껏 보내고 있을 때였다.

희망에 차 공부도 했었고, 미래의 인생에 대해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내 생명은 종착점이 없을 것이라 상상하던 때였다.

사실상 윌리암 홀덴의 슬픈 얘기는 남의 얘기였지 나하고는 커다란 상관이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어느 새 죽어, 태워져, 뿌려져 사라져야 하는 일이 결국은 나의 얘기로 다가와 있었다.

언젠가는 죽어, 태워져, 뿌려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다. 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머리속을 휘젖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았던가?"

"나는 왜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가?"

"나는 왜 그 사람을 좀 더 사랑해주지 못했던가?"

"나는 왜 꼭 그 경쟁에서 이기려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비하였던가?"

"나는 왜 나눠주지 못했던가?"

"…………………………………"

그러나 나를 정말 답답하게 했던 것은 다음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현실로 돌아가 내 직장에서, 내 지역사회에서, 내 가정에서 주위 사람들을 더 사랑하며,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아낌없이 나눠주며,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그 대답은 "못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존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디에 가서,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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