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속에 살아 있는 한국 춤
지루한 반복 통일성 부족 흠

홍지영 무용단의 춤판(19일·청주예술의 전당 소공연장)은 물질문명과 산업사회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기존의 춤 무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구현받을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며, 그 이상향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니라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전개하고 있다.

홍지영은 이번 공연에서 전통속에 박제된 한국춤이 아닌 현대 속에 살아 있는 한국춤의 모습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활력있는 춤사위와 한국전통춤을 변형해 무용언어를 확대한 노력이 엿보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장면장면이 극성(劇性)이 짙은 감동을 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앙상블화 되지 못했다. '밑'과 '단지'의 두 개 작품은 우리의 희망적인 면보다는 절망, 비탄의 모습만을 조각시켜 인간성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전달됐다. 이것은 작품이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고, 무대 운용이 작의적인데서 오는 식상함이 있기 때문이다.

'밑'은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강한 느낌을 자아내는 듯했지만 안무가 작품 전체에서 합리적으로 맞아 떨어지진 못했다. 연신 숨을 헐떡이는 춤사위의 지루한 반복이 조화를 얻지 못해 흠으로 지적됐다.

'단지'는 홍지영이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는 일면을 입증해 주고 있고, 나름대로의 무용세계를 구축하려는 의지를 느끼게 한 작품이다. 그것이 어느 수준이건 춤에 대한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는 한국춤의 변형과 확대는 돋보였으나 자기도취 적인데서 출발하는 우리 전통춤의 한계를 보여줬다. 춤의 앙상블은 잘 맞아떨어졌는데 무용수가 작품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가슴을 쥐어뜯으며 가학적으로 소리내어 우는 장면은 너무 센티멘탈리즘으로 비쳐졌다.

왜 무용수가 관객들에게 눈물을 보이며 울어야 했는지가 모호했다. 차라리 이를 좀 더 인간의 저항적인 모습으로 춤사위를 그려내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관객들의 시선이다.

앞으로 안무자의 관점과 방향감각의 상실이 혼돈되지 않는 무대, 즉 내밀한 몸짓언어를 위한 완성도 있는 춤판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현숙 기자 leeh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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