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혁 청주 서운동 천주교 성당 신부

지난달에는 한 주간 '피정'을 했다.

'피정'이란 잠시 일상을 벗어나 고요함 가운데서 내 자신을 추스르며 바로잡는 일이다. 수녀님들이 손수 해주는 맛있는 밥을 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침묵 피정 중에도 자꾸만 말을 건네는 하나의 글이 있었다.

'내 등의 짐', 한 주간 본의 아니게 묵상거리가 되었고, 내 짐의 의미를 일깨워준 고마운 글이다. 여기에 본문을 실어본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짐이 있다.

내 짐을 지지 않는다면 거둘 열매도 없다. 나 하나 편하자고 그 짐을 벗어 던진다면 누군가의 어깨는 그 만큼 짓눌릴 것이다. 그동안 과학과 기술은 우리의 삶에서 많은 짐들을 순식간에 벗겨 주었고, 사람들은 그 효과적인 힘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짐들이 줄면서 보람도 줄었고, 짐들이 사라지면서 의미도 함께 사라져갔음을 이제는 생각해야 한다. 편리함을 누렸던 그만큼 아니 그보다 몇 곱절 무게의 짐이 되어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왜일까.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기 만족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고, 타인을 위한 사랑을 뒷전으로 미룬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 존중과 배려가 없을 때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의 짐이야말로 내가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사랑의 멍에라고 생각한다. 그 멍에는 구속이 아닌 자유이다. 짐이 아닌 힘이다.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 서로 나누어지고 갈 때 그 멍에는 곧 사랑이다.

햇살을 보지 못하는 지하방에서 눅눅한 삶을 견디고 있는 150만 명의 사람들이 휘청거리는 도심을 떠 받치는 가장 귀한 은인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고된 짐을 함께 느끼고 나누려 할 때 땅 위에 사는 이들의 아픈 어깨는 낫게 되리라. 사랑이야말로 내 등의 짐을 기쁘게 지게 할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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