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본사 회장

지난주 유석(維石) 조병옥(趙炳玉) 박사의 동상 제막식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첫째는 동상을 세울 때마다 친일파다, 반민주 인사다 등등 말도 많고 반대시위까지도 있었지만 조병옥 박사 동상 건립은 모두가 다 흠모의 마음으로 임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우리 충남 천안 출신으로 공주에서 영명고등학교를 다닌, 그야말로 충청도를 대표하는 조 박사의 너무나 컸던 정치적 구심력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는 허전함이다. 1960년 조 박사 서거 이후 한동안의 정치 공백이 있었으나 그래도 JP(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3김' 정치의 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을 때만 해도 어떤 평가를 받든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작용했었다.

그 '3김 정치'가 끝나고 JP가 크게 퇴조하면서 그나마 충청권의 정치 중심체가 무너져 버렸다. 지금 원내 교섭단체도 구성 못하는 10명 미만의 소수당으로 전락한 자민련이다.

14년 만에 충남도민의 숙원을 풀었지만 계룡시 승격을 위해 지난 5월 심대평 충남지사가 국회 상임위원회에 들렀을 때의 숨은 이야기가 있다. 도지사가 왔다고 자리를 권하는 사람도 없었고 설명할 기회도 주려고 하지 않았더라는 것. 그래도 이 사람, 저 사람 물고 늘어졌지만, 그의 공직생활 가운데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그만한 파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충청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충남 예산을 연고로 하고 있는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그리고 '이회창 대세론'에 의해 많은 충청도 출신 국회의원들이 그 앞에 줄을 섰다.

그러나 결과는 무위로 끝났다.

그리고 기존의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과 자민련이나 민주당에서 넘어온 국회의원들과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 공천 문제로 갈등을 빚는 곳도 있다. 그래도 이와 같은 갈등을 아우르고 강력히 이끌어 갈 지도자가 없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간판으로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민주당 간판을 고수하겠다는 측과 개혁의 시대에 맞게 새로 당을 만들겠다는 측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충청도는 구심력도 없고 강력한 리더십도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고 말았다.

지난 4월 실시된 공주시장 보궐선거가 매우 교훈적이다.

한나라당 후보는 33년을 지방행정에 몸바친 유능한 공무원 출신이다.

민주당 후보는 3번이나 축협조합장을 역임한 조직의 명수요 '행정수도를 공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건 여당의 후보였다.

자민련 후보는 도의회 부의장까지 지낸 지방자치의 경륜에 자민련 출신 국회의원의 지원을 받는 몸이었다. 특히 공주와 인연이 깊은 JP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3당 후보 모두 고배를 마셔야 했고,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오영희(60·여) 무소속 후보가 승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물론 오 후보는 남편이 선거법 위반으로 현직 시장에서 중도 하차한 데 대한 유권자들의 동정심이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동정심이라 해도 그 막강한 조직의 공당 세 후보가 그 '동정표'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한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요즘 우리 충청도의 정치기상도다. 마치 빈집에 아무나 들어가 감나무의 감을 따는 것과 같다.

이 '빈집털이'를 보는 마음,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조병옥 박사처럼 충청인의 긍지를 채워 줄 거목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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