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용균 의원 등 56명이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시·군·구 행정단위의 일부를 쪼개 인구 하한선에 미달하는 선거구의 경우 옆 선거구 유권자 일부를 끌어다 독립선거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법안의 주요 골자다. 칼로 두부 짜르듯이 선거구를 자신들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 아직도 이런 해괴한 발상이 나오다니 한심하다.

인구 하한선에 가까스로 모자라는 유권자를 채우기 위해서 행정단위를 무시하자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선거구 획정은 인구, 생활 공동성, 지리적 인접성 등을 고려하되 객관적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법안대로라면 이는 엄연한 게리맨더링으로 일부 의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졸렬한 방안이다. 행정단위도 무너지고 지역대표성도 희석되는데 당선만 되면 그만인가. 선거구 획정에 국회의 재량권이 있다지만 적어도 헌법정신과 국민감정을 고려해야 한다.

선거구간 인구편차가 4대 1 수준에 육박하는 현 제도는 2001년 10월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오는 연말까지 3대 1 수준으로 개정하도록 판시했다.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구성됐지만 활동이 뜸하다. 정치개혁특위도 연말까지 활동시한을 연장한 것이 고작이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서두르려 하지 않고 있다. 선거에 임박해서 여야가 손잡고 후딱 처리하는 것이 통례처럼 돼 버렸지만, 지금처럼 드러내 놓고 행정단위를 무시하자는 것은 시대에 한참 역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선거구 획정에서 있어서 민주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표의 등가성, 지역대표성 등을 고려하되 행정단위가 유지돼야 한다. 생활권을 기준으로 하는 지역대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국민의 욕구를 정치권이 맘대로 훼손시켜선 안 된다. 정치권이 밥그릇 싸움에만 눈길을 줄 것이 아니라 비례제 확대와 지역주의 타파 등과 같은 난제를 풀어 가는 방향으로 선거구제를 논의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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