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저고리 다듬듯 고객인생도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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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저고리 다듬듯 고객인생도 디자인
  • 서이석 기자
  • 승인 2002년 11월 08일 00시 00분
  • 지면게재일 2002년 11월 08일 금요일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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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중앙시장 마당발 한국주단 이혜승氏
"신랑이 신해생 돼지띠고 새댁은 원숭이띠라… 태어난 시(時)는?"
바쁜 인생사가 펼쳐지는 대전역 한 켠 한국주단 장사는 제껴둔 채 주역책 펴 들고 손 가늠하기에 바쁘다. 폐백 한복을 보러온 예비 신랑 신부는 본분(?)은 망각한 채 술술 풀어놓는 인생사에 삼매경이다. 분명 점집은 아닌 듯한데 주인장이나 손님이나 흥정은 뒷전이다.
"신랑은 바람기가 약간 있지만 새댁을 잘 만났어. 신랑은 화(火)기가 있어 
이곳 저곳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데 새댁은 토(土)라 다 받아주는 상이야." 대전 중앙시장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이혜승(55)씨. 오늘도 남의 인생 들여다보기에 여념없다.



오전 내내 바쁜 일과를 끝내고 한숨 돌릴라치면 또 한쌍이 문을 연다.

이번엔 머리 희끗한 할머니가 마흔 줄 넘은 과년한 딸을 데리고 왔다.

집안에 노처녀 둔 집이야 경사 중에 경사인데 며느리 얻을 나이에 딸을 여의게 됐으니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닌가 보다.

늦게 시집가서 잘 살 수 있을지, 시댁에서 귀염받을 수 있을지 사는 얘기, 한(恨) 맺힌 얘기로 온갖 수다를 풀다 보면 세 아낙네 웃다 울다 한다.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나면 어느새 입가엔 웃음이 찾아든다.

시름 덜어냈으니 복채(?) 좀 받을 법한데 이씨는 폐백 때 입을 고운 한복 한벌로 끝이다.

취미로 하는 일에 돈 욕심은 없었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 놓고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그녀지만 그녀 인생 또한 우여곡절로 가득찼다.

강원도 부유한 집에서 곱게 자라 기독교 학교를 다녔고 엘리트 대학에서 약사 공부까지 했다.

60년대 원주여고 다닐 때는 고향인 평창에서 다니기 힘들다고 집안에서 원주에 집을 얻어 일 식구까지 딸려보냈다.

고지식한 아버님에 장사하시는 어머니, 집에서 그녀에게 거는 기대는 실로 컸음이다.

"당시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때니 여자가 대학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때였죠. 하지만 당시 부모님은 공부하고 싶으면 계속하라고 했어요. 엄한 집안이었지만 교육에 대한 열정은 컸던 것 같아요."

교육 제대로 받은 신식 여성이 생면부지의 대전에서 자리 펴고 인생 상담하는 데에 그녀는 팔자에 속아 팔자대로 살고 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했어요. 약국 개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이 만류했죠. 아이들 낳고 서울에서 제법 자리 좀 잡을 때쯤 시아버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남편 따라 대전에 오게 돼 결국 뿌리내리게 됐습니다."

대전에 와서 고생이 심했다.

넷이나 되는 아이들은 둘째치고 시부모님 병수발에 정신이 없었다.

힘든 마음에 남편을 돌아봤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직장에 바쁜 나날이었다.

곱게만 자랐던 그녀에게 하루 하루가 힘들게 다가왔고,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지금 시장에서 사람들 인생 속내 들어주는 것도 그 때 말못한 한을 풀어내는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세상에 눈 뜰 수 있었던 기회였죠."

아이들이 자라면서 좀 여유가 생겼다.

집안에만 묶여 있던 인생을 새롭게 새기고 싶었다.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회 활동을 했고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그래도 남들 눈에 제법 잘해 보였는지 이곳 저곳에서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큰 행사가 있으면 강연자로 모셔졌고, 한 입담에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

"행사 때마다 학부모 대표로 연설을 하곤 했어요. 한 번은 교육부장관을 모신 자린데 이 자리에 온 사람들 자식들 라면 먹이고 왔냐면서 그 앞에서 면박을 준 적이 있어요.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은 난리가 났고 그날 온 사람들은 배꼽을 뺐죠. 억지로 불려나온 사람들을 대신해 속시원하게 한마디 해 준 거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소위 마당발이 됐다.

중앙시장과 인연이 맺어진 것도 이 때.

지난 95년 대형 유통상가의 등장으로 재래시장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시장 번영회에서 같이 일해 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명함은 홍보실장.

날품팔이 하듯 열심히 일했고, 특유의 상술에 제법 수익이 올랐다.

그러다가 지난 97년 IMF 환란을 맞았다.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물건을 댔던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진을 치고 살았다.

홍보업무를 맡던 그녀는 책임은 없었지만 물건 대금을 요구하는 그들의 요구를 하나 둘씩 들어줬다.

"당시 사람들은 저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다들 도망가는 판에 남의 빚을 떠안았으니까요. 저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고 차라리 직접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경영난을 겪던 대전관광호텔 자리에 한국주단이란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다.

발품이야 타고난 만큼 하루가 다르게 가게가 번창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자 뭔가 다른 것을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곰곰이 생각했죠. 공부도 해 볼까, 사회활동을 본격적으로 해 볼까. 이것 저것 생각해 보다가 어렸을 적 잠시 봤던 주역책이 생각나더군요."

창고 안에 처박혀 먼지 풀풀 나던 주역책을 꺼내 들었고, 지금 인생 상담은 그렇게 시작했다.

"주역에서 사주팔자를 풀어 주죠. 그러나 팔자보다 관상이 더욱 확실합니다. 그 관상을 뛰어넘는 건 심상이죠. 마음 곱게 쓰면 안되는 일 없어요. 항상 상담하러 오는 분들에게 첫째도 둘째도 마음을 곱게 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중앙시장에는 온갖 인생들이 숨어 있어서 좋다고 한다.

때론 힘들고 때론 즐거운, 그들의 마음 하나 하나를 보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렇게 한동안 놓쳤던 인생을 다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