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역 충청의철도]13)충북선 음성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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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역은 조치원과 제천을 연결하는 충북선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조치원역이나 중앙선과 태백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제천역이 등거리다.그렇지만 음성역은 하루 100명 안팎의 승객만 이용하는 초라한 규모다.주말이 돼야 승객 수는 150∼200명으로 늘어난다.? 음성역의 이용객 수가 적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과거 시가지 한복판에 자리했던 음성역은 충북선 복선화 및 선형개량을 하면서 음성 중심부로부터 약 2㎞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다.

역을 이용하고자 걸어서 찾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고 택시를 이용하자니 요금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옮겨진 역사는 시내버스가 연락부절하는 곳도 아니다.

그러니 이용이 저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음성은 국도가 사방 4차로로 뚫려 도로교통 여건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좋은 편이어서 열차의 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음성지역의 인구 감소도 역 이용객 수가 줄어드는 또 다른 이유다. 음성군은 충북에서 인구가 지속 늘어가는 몇 안 되는 시·군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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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성지역의 인구 증가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서부지역 금왕읍과 대소면이 주도하고 있을 뿐 실상 음성읍 지역은 인구 감소가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한 때 2만 3000명에 이르렀던 음성읍 인구는 1만 8000명 수준으로 감소해 인접한 금왕읍보다 2000명가량이 적고 대소면보다 2000명가량 많은 수준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열차를 이용할 승객도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음성역은 출퇴근하는 공무원과 교사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여객 수요를 이어가고 있다. 교통 여건이 바뀌고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 수는 감소했지만 음성역은 산업적 측면에서 중요성을 이어가고 있다.

음성역 바로 옆에는 중부지역에서 손꼽히는 연탄공장(동원연탄)이 있고 이곳에서 사용되는 무연탄이 모두 화물열차를 통해 운반된다.

강원도 태백 통리역과 전남 화순역에서 각각 실어오는 무연탄을 음성역 옆 공장에서 적정 분량으로 배합해 효율적인 열량을 내는 연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연탄은 다시 화물열차 편으로 중부지역 곳곳에 운송된다.

무연탄과 더불어 음성역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또 하나의 화물은 양회(시멘트) 가루다.

강원도 동해 옥계역에서 배송되는 양회는 음성역 플랫폼 옆에 설치된 탱크에 보관되고 여기서 인접한 각 레미콘 회사로 뿌려진다.

이렇듯 무연탄과 양회는 음성역의 양대 버팀목이다.

하루 18회의 열차만 운행되고 100명 남짓한 승객이 이용하고 있는 음성역.

음성역에는 매점도 하나 없다.

역 앞에는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음성역의 존재는 결코 초라하지 않다.

충북선의 중심부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는 의미도 여전하다.

음성역 직원들은 음성역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 한 가지를 안내한다.

번잡한 대도시 역들은 유료 주차장을 마련해 놓고 시간단위 분단위로 야박하게 주차요금을 받고 있지만 음성역은 넓은 주차장이 마냥 무료다. 그래서 음성역까지 자가용을 몰고 와 주차를 해 놓고 며칠간 기차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호젓한 음성역에 차를 세우고 열차를 이용해 강원도 동해바다 구경을 다녀오면 어떨까.

넉넉한 인심이 묻어 있는 마음의 고향 음성에는 충북선의 중심 음성역이 있다.

글=김도운 기자 ojae@cctoday.co.kr

사진=신현종 기자 shj0000@cctoday.co.kr

[역에서만난사람]민준기 역무과장
"22년 열차와 동고동락 고단함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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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인 태백 사북역에서 철도원으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벌써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누구에게나 말합니다. 보람되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민준기(47) 음성역 역무과장은 철도원으로 살아온 인생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86년 공채로 역무원이 된 김 과장은 사북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이후 6년여를 강원도 일대에서 근무하다가 충청권으로 넘어와 현재까지 충북선과 장항선, 경부선을 넘나들고 있다.

대전열차사무소 소속으로 근무할 때는 열차 승무원으로 전국 팔도를 누볐다.

"승무원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집에서 자는 날이 5일 정도였던 것 같아요. 이후 역무원으로 일할 때는 줄곧 24시간 맞교대를 해야 했지요. 편했던 날보다는 고되고 힘들었던 날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절대 후회스럽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천진으로 알고 일했으니까요."

다른 역무원들처럼 김 과장도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3교대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가족들과 식사하는 시간도 늘었고, 명절 때 차례를 지내는 일도 잦아졌다.

그 전에는 늘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삶의 연속이었다. 다른 가정과 달리 김 과장네 가족은 명절이나 휴가철을 싫어한다고 한다.

어차피 가족이 함께할 수 없는 명절이고 휴가철이다보니 남들을 부러워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성장한 자녀들도 성실하게 철도를 지켜온 아버지를 이해한다.

철도원으로 외길 인생을 살아온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도 식구들이 있는 청주에서 직장인 음성까지 매일 열차로 출퇴근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민준기 과장.

그는 앞으로도 충청의 철도를 지키는 든든한 지킴이로 남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말한다. 김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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