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온통 영어에 빠져 있다. 오렌지가 아니라 아린지로 말하자고 법석이다. '아뿔싸'·'어머나'를 '오 마이 갓'으로 해야 할 판이다. MB정부의 영어 어록은 그야말로 현란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만들고, 휴일 없이 업무에 임하자며 '노 홀리데이'를 외친다. 인선을 하면서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몰라도 두잉 데어 베스트(Doing their Best)는 하자고 혀를 굴린다. 정부가 앞장서 앙드레 김과 최민수식 회화를 시범보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영어 잘하면 군대도 면제한다는 병역특례제는 하루도 못가 돌팔매를 맞았다. 잉글리시 공부열풍에 콩글리시 세상이 곡소리를 내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다 잘 먹고 잘산다. 예전엔 'X구멍'이 찢어지도록 못 먹고 못살았다. 쌀이 없어 시래기나 거친 풀을 많이 먹으니 '뒷문'이 고장날 수밖에. 그러나 못 먹고 못 가르친 집의 자식이 세간사에 회자될 만큼 한가락씩 했다. '신분상승'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공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뒷받침을 잘해야 공부도 잘한다. 시래기를 먹어도, 풀떼죽을 먹어도, 까칠한 보리밥을 먹어도 눈물이 나지 않지만 못 가르칠 때 눈물이 나는 세상이다. 현재 20조 4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과외로 쏟아 붓는 돈은 15조. 초·중·고교생 5명 중 4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고 매월 28만 8000원을 쓰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44개월 동안 4300만 원의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셈이다.

▶네 살배기 꼬마가 월 80만 원짜리 유아전문 영어 사교육을 받고, 2박 3일 영어캠프가 60만 원이나 한다. 심지어 골프와 영어를 접목한 해외캠프도 등장했다. 정부도 극성이고 부모들도 극성이다. 내 초등생 아이도 영어학원 15만 원, 수학 10만 원, 예·체능·학습지 27만 원짜리 인생을 산다. 자식이 둘이니 한 달에 100여만 원 꼴이다. 허리띠 졸라매며 안 먹고 안 입으면서 쏟아부어도 허리가 휜다. 월 평균 28만 원이라는 '어리바리' 사교육비 통계는 그야말로 통계일 뿐 '사교육 錢爭(전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영어공화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 이상은 MB정책으로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교육 양극화도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사교육비 변통을 위한 부모들의 잔혹한 '날품팔이'가 계속되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은 전봇대 뽑기가 아니다. '될성부른 그럴듯한 정책' 달랑 내놓으면 콩글리시가 잉글리시로 변하리라고 착각해선 안된다. 교육정책이란 삿갓 쓰고 도포 입고 민심 속으로 암행(暗行)이라도 거쳐본 후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인륜지대사다.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