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26일 구 소련의 우크라이나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사소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대재앙을 불러 왔다.

발전소 근무자 31명을 비롯 낙진후유증으로 1만 5000여 명이 죽었고 방사능 영향을 받은 사람도 9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5만 명의 체르노빌 거주 시민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암·백혈병·기형아 출산 등 후유증을 앓고 있고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나 야채를 먹을 수가 없다. 체르노빌의 박물관에는 사고 당일 멈추어 버린 시계, 그리고 사고수습에 동원됐던 장비, 그들이 입었던 방재복 등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도됐던 사건기사도 전시돼 있고 특히 사고수습을 위해 헌신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사진과 유품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이때 죽은 어린이들의 사진들과 그들이 죽기 전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인형들이 전시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류 최고의 핵발전소 사고를 몸으로 겪은 체르노빌 사람들의 절절한 부르짖음이 박물관 곳곳에 녹아 있음은 제2의 체르노빌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헤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의 방제작업에 참여한 자원봉사자가 지난 주 드디어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일본이 후쿠이현 기름유출 사고 때 4개월 동안 현장을 찾은 자원봉사자가 30만 명을 돌파하자 '30만 명의 기적'이라고 흥분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77일 만에 그것도 매서운 겨울바다 바람을 맞으며 100만 명을 돌파한 것이야 말로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국보 1호의 화재, 천문학적 금액의 부정부패, 후진국 수준의 정치 추문, 대형 인명사고가 날 때마다 '한국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다가도 자원봉사자가 짧은 시간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것은 분명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보여준 희망의 메시지다.

또한 IMF 사태를 맞아 국민들이 장롱 속의 돌반지를 꺼내 들고 은행 앞에 줄을 섰던 그 긴 대열을 연상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정적 순간에는 이렇듯 뛰어드는 우리 민족의 무한한 가능성. 그래서 해방 후 세계 최빈국이던 이 나라가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그동안 우리 국민이 보여준 엄청난 힘이 멈춰버린 서해안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며 방제작업이 완료되면 빠른 시일 내 '승리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엔 서해안 살리기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의 명단을 등재할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두 번이나 달려왔음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기부의 천사 가수 김장훈, 그리고 전국에서 모여든 교사, 학생, 종교계의 성직자, 택시기사, 라이온스회원, 기업체 직원, 그리고 어제는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과 임직원들… 등도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다. 방제작업에 동원됐던 장비, 방제복, 그리고 사고를 일으킨 배 모형도 전시될 것이다. 마치 체르노빌 박물관처럼.

그 참담했던 서해안의 재앙, 그 분노의 검은 바다를 살려낸 우리의 뜨거운 의지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좋은 착상이라고 생각된다.

체르노빌 박물관은 죽음의 재앙을 영원히 기억하고 경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지만 태안 앞바다에 세워질 승리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재앙을 극복하고 승리한 의지를 후세에 길이 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바다에 대재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서해 바다의 희망을 동시에 전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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