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희미한/

목척교에 기대 서서/

나홀로 외로이/

이슬비를 맞으면서…/

이 노래는 40∼50년 전 유행하던 안다성의 '못 잊을 대전의 밤'에 나오는 가사 일부다. '대전의 밤'하면 떠오르는 게 '목척교'일 정도로 목척교는 대전의 상징이었다. 대전역에서 울리는 열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목척교를 걷는 것은 정말 대전의 낭만이었다.? 그뿐 아니라 6·25란 중에는 피난민들에게 '만남의 광장'역할을 했다. 그래서 목척교는 전쟁 중이나 전쟁이 끝나고도 애타게 가족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목재로 세워진 목척교는 1931년 여름, 엄청난 폭우로 떠내려 갈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그때 대전읍장이던 일본인 사이또 야스브로를 비롯 많은 대전 읍민들이 동아줄로 다리를 묶어 밤새도록 사투를 벌인 끝에 다리를 건져냈다. 이후 다리는 목재에서 철근 콘크리트로 바꿨고 이런 일로 목척교는 더욱 사랑을 받아 왔었다.

그렇게 대전시민들의 가슴에 깊은 뿌리를 내렸던 목척교가 1974년 이곳에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들어서면서 헐려 콘크리트로 복개돼 버렸다. 지금 같으면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나 복개공사를 몸으로 막았을 텐데 그때는 정부 권력의 파워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대전시민들은 목척교를 무참히 도둑맞은 것이다. 그후 모 국제봉사단체에서 이곳에 목척교 유래비를 세워 후세에 남기자고 하여 필자가 그 글을 썼고 아직도 이비는 중앙데파트 광장 한쪽에 서 있다. 그동안 대전시는 대전천 살리기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고 시민들 역시 한목소리로 그것을 갈구해 왔다.

그래서 마침내 대전시는 금년 7월 중앙데파트부터 철거하기로 하고 건물 매입가격을 187억 7000만 원에 최종 합의했다는 것이다. 계약금 100억 원을 지난해 지급하고 나머지는 금년에 지급한다는 것. 그러나 대전시가 엄밀히 말해서 대전시민의 혈세로 지불해야할 돈은 187억 원에 끝나는 게 아니다.

건물을 철거하는데 필요한 돈과 그 밖에 비용 40여억 원이 추가로 소요된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이 대전시민에게 이렇듯 많은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들은 공유지인 대전천을 무단히 깔고 앉아 30여 년간 재미를 보아 왔다. 옛날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1977년 수해때는 이들 건물 교각 300여 개가 차지하는 면적에다 떠내려 온 목재더미가 교각에 걸리는 바람에 물이 넘쳐 동구 중동 일대가 물난리를 겪는 아픔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건물을 시민혈세로 사들여야 하고 다시 그것을 철거하는데 또 혈세를 낭비하다니….

더욱이 국가하천부지를 사용하면 20년 후 국가에 기부체납 하는 게 상례인데 시청에 보관 중이던 이 계약서가 분실되는 해괴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지금도 미스테리다. 그러나 법치국가에서 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억울해도 건물 값을 물어 주자. 또 철거비용도 지불하자.

하지만 30여 년 대전시민이 입은 고통은 누가 보상하나? 대전시가 시민들에게 보상하는 것은 3대 하천 생태복원사업을 잘 추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자는 그동안 국가땅을 내땅처럼 이용했으니 양심껏 시민에 대한 보상의 길을 찾아야 한다. 금액의 일부라도 대전시민을 위한 자선사업기금으로 내놓든지 그 길은 많을 것이다. 평생 뼈빠지게 일해 번 돈을 자선사업에 내놓은 독지가도 많지 않은가. <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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