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500년 조선왕조의 모든 것을 기록한 역사다. 여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일까? 두 말할 것 없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다. 당대 최고의 거유이면서 당쟁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 건국 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아무래도 소위 '3김'으로 불리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씨가 꼽힐 것이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을 그만 두고도 40년 세월 계속되는 이들의 이름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능가하는 기록이다.

DJ는 아직도 '누가 집권하면 전쟁…'하며 훈수정치를 계속하고 있고 YS는 '먼저 인간이 되라'는 등 특정후보를 겨냥한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3김'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을 못하고 2인자 역할만 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가 했던 JP도 요즘 '나 여기 있다!'하며 정치일선에 돌아왔다.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명박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과연 JP는 그와 손잡으면 대통령이 되는 킹메이커인가?

가정해서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자. 2002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씨는 선거가 임박한 어느 날 아침 JP가 살고 있는 서울 신당동으로 향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JP의 자택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급한 전화가 왔다.

JP를 만나지 말라는 어느 중진의 전화. 이회창 씨는 잠시 망설이다 차를 돌리고 말았다.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결국 이회창 씨는 노무현 후보에게 충청도에서 25만 표 차로 패배했다. 전국적으로는 57만 표의 근소한 차이였기에 만약 이회창 씨가 JP손을 잡았다면 그래서 신당동 자택방문이 성사됐다면 선거는 역전됐을지 모른다.

그에 앞서 1997년 대선 때도 JP가 김대중 후보와 함께 소위 DJP연대를 이룸으로써 이회창 씨는 패자가 되었다.

그때도 DJ가 대전에서 11만 표, 충남에서 25만 표, 충북에서 5만 표를 앞서 당선이 되었다. JP는 결과적으로 이회창 씨에게 두 번이나 눈물을 흘리게 한 악연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도 JP는 이회창 씨와 악연을 맺게 됐다.

'충청도 맹주'로 일컫는 JP가 정치일선에 돌아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준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신당동으로 JP를 찾아 갔고 그 자리에서 JP는 한나라당 입당원서에 '김종필'이라고 시원스럽게 자필서명을 했으며 이어 당 명예고문으로 추대됐다.

그리고 80노구를 무릅쓰고 지방유세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래서 '3김'은 계속되고 있는 것.

그러면 대선후보직까지 사퇴하며 이회창 후보를 돕던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는 어떻게 되는가? JP와 심대표는 오랫동안 끊을 수 없는 정치적 인연을 뜨겁게 맺어온 처지라 보는 사람에게 '정치무상'을 실감케 한다. 또 다섯 손가락 밖에 안 되는 국민중심당 국회의원 중 정진석 의원이 심 대표와는 달리 이명박 후보 쪽으로 돌아섰으니 이것은 또 어떻게 설명돼야 할까?

이명박 후보와 JP로 형성되는 큰 줄기와 이회창 후보, 심대평 대표로 형성되는 충청도의 큰 줄기.

이 두 산맥이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충청도에 남는 것은 상처일 것이다.

여기에다 '충청도 대통령'을 들고 나온 이인제 민주당 후보까지 합치면 충청도는 일찍이 볼 수 없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충청도에 인물이 많다고 기뻐해야 할까.

산산히 찢어지는 충청도 정치판을 걱정해야 할까. 제발 누가 이번 대선에서 승자가 되든 충청도가 입을 상처는 최소화하자. 그렇지 못하고 후유증이 계속되면 충청도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이것이 걱정스럽다. <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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