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993년 10월. 고려 성종12년에 거란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우리나라를 침공해 왔다.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고려는 발칵 뒤집혔다.

성종 임금은 직접 독전차 전방으로 달려갔으나 적장 소손녕(蕭遜寧)이 봉산군을 격파하고 우리의 선봉군사인 윤서안(尹庶顔)을 포로로 잡는 등 전황이 위급해져 개성으로 황급히 돌아와 중신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중신들이 겁에 질려 항복하자는 투항논(投降論)과 평양 이북의 영토를 거란에 떼어주자는 할지논(割地論)으로 나뉘었다. 결국 비굴하게 항복하자는 데는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평화를 얻자는 것이다.

그러나 항복으로 결정짓는 마지막 순간 내사시랑(內史侍郞) 서희(徐熙)가 분연히 일어나 '마루를 적에게 내어주면 안방까지 잃게 된다'며 자신이 직접 적진에 뛰어들어 담판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서희가 적장 소손녕 진영에 도착하자 소손녕은 서희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서희는 이를 거절하고 꼿꼿하게 마주선 채 회담에 들어갔다. 기싸움에서 서희가 이긴 것이다.

서희는 거란의 군대가 80만이라고 하는 데는 과장돼 있고 거란의 침공의도가 중원을 차지하고 있는 송(宋)나라와의 대결에 있으며 거란과 송나라 사이에 여진이 있는 등 모든 여건을 통찰하고 이와 같은 약점을 역이용, 담판을 벌였다.

"우리 고려가 당신네 나라와 화친을 맺지 못함은 한쪽 옆에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여진 때문이니 우리가 여진을 쳐서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시키는데 도와 달라. 그러면 우리는 그대들과 화친을 맺겠노라."

서희는 거란으로서도 부담스럽던 여진족을 평정해서 거란의 안보를 확실히 해주고 고려는 고구려의 영토를 찾겠다는 요즘으로 말하면 '윈-윈'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이리하여 거란은 대군을 철수하고 오히려 압록강 동쪽 280리, 6주를 고려에 돌려주는 협약을 맺었다.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러 왔다가 거꾸로 고려에 많은 땅을 내주었으니 서희의 담판은 대단한 쾌거였다.

뿐만 아니라 거란은 서희에게 잔치를 베풀고 낙타 10두, 말 100필, 비단 500필 등 선물까지 주었다.

이처럼 서희는 우리 역사에 그 유례가 찾기 힘든 만큼 당당하고 냉철했으며 그렇게 적의 상황을 꿰뚫고 회담에 임하여 쾌거를 이루었다.

내일 우리의 김장수 국방장관이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위해 평양에 간다. 이 회담은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이다.

김장수 국방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고려시대 서희를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많은 국민들이 최근 들어 그동안 우리의 서해를 방어해 왔던 NLL선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인천과 서울이 전략적으로 노출되는 것이라는 불안을 갖고 있는 시점인 데다 과연 NLL이 영토인가 하는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해 보위를 책임지고 있는 군 수뇌부가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불안의 마음은 가시지 않고 있다.

분명 NLL은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어릴 때 땅따먹기 놀이' 정도의 가벼운 것이 아니다. 고려의 서희가 '마루를 내어 주면 안방까지 잃게 된다'며 몸을 던져 지키려했던 것과 같은 우리의 영토다.

물론 김장수 장관이 대통령을 수행하여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고개를 굽히지 않고 꼿꼿한 자세를 취한 것은 거란의 최고 장군 앞에서의 서희를 연상케 하지만 부디 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북한의 허점을 꿰뚫고 NLL을 지키는 '제2의 서희'가 되길 기대한다.? <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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