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 모 호텔에 특별한 방이 하나 있다. 대통령 선거 때 이방에서 자고 간 후보는 당선됐다 하여 대권의 부적처럼 알려져 있다.

1997년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이곳에 투숙할 기회가 있었는데 '1급 호텔에서 자면 서민들의 눈총을 받는다'며 예약까지 한 것을 취소하고 2급 호텔에서 자고 갔다. 반대로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이 호텔 방에서 하루를 묵었다는 것이다. 결과는 DJ가 대통령이 됐고 이회창 후보는 패배하고 말았다.

DJ역시 1992년 대선 때는 이곳에 투숙하지 않았고 YS(김영삼 전 대통령)만 잠을 잤는데 결과는 YS의 승리였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때도 이회창 후보는 주변의 권유를 물리치고 투숙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결과는 낙선. 물론 이것은 호텔가의 잡담에 불과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이런게 꼬리를 문다. 어떻게 호텔방이 대통령의 당락을 좌우하겠는가.

묘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된다는 호텔방까지 거절했던 이회창 씨가 지난 여름, 직계 조상묘를 이장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가 이미 오래 전 대통령 출마를 작심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새로 이장을 한 예산군 신양면 녹문리에는 요즘 방송국 TV카메라맨들과 전국에서 모여드는 풍수지리가들로 북적대며 심지어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찾아 오는 풍경이 벌어진다니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우연히도 DJ 역시 대선 전 전남 신안에 있던 조상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옮기고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 강한 유혹을 물리칠 수 없을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조상묘도 "봉황이 날개를 접고 잠을 자는 형국으로 이장 후 100일이면 왕성하게 기를 발한다"는 것.

그런데 이회창 전 총재가 DJ를 따라가는 데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앞에서 말했듯이 조상묘를 이장한 것이고, 두 번째는 대통령 3수에 도전하는 것이다. DJ역시 재수에 실패한 후 정치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건너갔고 눈물을 흘렸다.

이회창 전 총재도 안경 너머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 '은퇴선언'은 허구로 끝났고 눈물은 돌아서는 순간 증발해 버렸다.

세 번째는 DJ와 이회창 전 총재 모두 72세에 3수 도전을 한 것.

네 번째는 두 사람 다 야당분열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DJ는 1987년 YS와의 야당후보 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노태우 민정당 후보에게 대권을 넘겨 줘야 했다. '뺄셈의 정치' 즉. 분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고 그 후 YS가 3당 통합을, 그리고 그 후 DJ가 DJP연합을 통해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덧셈 정치'의 위력을 보여 주었던 것. '노무현+정몽준'의 지난 대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또 야권이 크게 분열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초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고 건 전 국무총리 등 충청, 호남권 대선후보군에 대해 '충청+호남'의 지역구도로는 여당이 이길 수 없다며 이들을 부정하고 한나라당의 분열이 최상의 카드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선거를 눈앞에 두고 노 대통령의 예상대로 야권의 분열이 요동치고 있으니 한국정치의 후퇴를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호텔방과 묘자리, 그리고 분열의 정치가 지배하는 현실을 가슴이 아니라 냉정한 눈으로 봐야 하겠다. <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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